나는 몇십 년째 ENFJ를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ENFJ 가 어떤 타입인가. 인류애로 살고, 인류애로 죽는 타입이지 않던가. ENFJ로 살면서 나에게 제일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요소는 단연코 '인간관계'다. 업무적인 스트레스보다 만나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이라 나는 나를 위해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않으며,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알지 않는다.'라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가, ENFJ로 근 20년 넘게 살면서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내 사람이 아니면 그다지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는 스타일이다.
나는 내가 잘못돼서 이 모든 사태가
일어났다는 자책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관심이란 이 사람이 뭐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직장을 다니고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가 아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구태여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20대 때는 '인간관계란 무엇일까?'만 생각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인간관계에 대해 늘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내 인간관계에 대해 명확한 해답은 없다는 게 내 결론이었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아도 결국 헤어질 사람, 욕할 사람, 남아있을 사람, 친해질 사람은 그때마다 달랐기 때문에 적절한 해법 또한 없었다.
20대 때는 사람에게도 관심과 애정,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노란 싹이 보이는 인간관계는 정리했으니 내가 생각하는 파란 새싹들만 관심을 주면 나를 배려해주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것은 모두 나의 허상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왜 그렇게 살았는지 내 사람들은 그렇게 관심 있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쟨 왜 저렇게 살아?'라며 앞에서는 웃으며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게 되는 나의 모습... 거기서 오는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그런 일들을 10년 동안 겪고 나니 나는 내가 잘못돼서 이 모든 사태가 일어났다는 자책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와 맞지 않고 무엇보다 나의 인생에서 내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관계와의 손절을 선언했다. 어차피 이도 저도 욕을 먹을 거라면 그냥 이대로 손절하고 편하게라도 살자, 해결할 수 없다면 그냥 보지 않고 듣지도 않겠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다 보니 점점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져버렸다. 그리고 친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까지도 나를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는다면 얄짤없이 '싹둑' 관심의 끈을 잘라버렸다. 그들에게 있어 내가 하는 것들이 꼴불견이고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내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 때문에 나 자신을 버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사실 살짝 억울하기도 했다. 나는 비판과 비난 없이 상대방의 인생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려 노력했는데 정작 본인이 나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썩 내키지 않았고, 이내 그러한 관계가 과연 건강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20대 땐 이런 관계들을 해결하려고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그것이 곧 덫없는 행동이었다는 걸 이내 깨달은 나는 오히려 불편한 관계는 싹둑 자르고 마음 맞는 친구와 새롭게 다가오는 인간관계에 내 에너지를 쏟는 게 내 삶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포인트는 관계를 싹둑 자르는 게 '절연'의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관계를 정리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들이 어떤 생각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나무도 가지치기가 끝나면 오히려 그 형태가 명확해지는 것처럼.
그리고 가지치기 이후에 그 이유가 내 본연이 가진 성질 때문인지, 그것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인지를 바라보고 그것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면 그 관계를 서서히 정리하는 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의 방법임을 알았다. 어차피 맞딱 들일만큼 깊은 관계였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에 내 에너지를 쓸 필요도, 내 감정을 소모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한번쯤
'나는 무엇이 급급해서
이 사람과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나?',
생각해볼 법하다.
20대의 시간을 거쳐 31살이 되고 나서 깨달은 건, 인간관계에서 이 사람을 정리해야 할지 고민이라면 단기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대방이 남을 인연인지를 보는 방법이 좋다는 사실이었다. 상대방에게 스트레스 내지는 눈치를 보고 있다면 '당장 나는 무엇이 급급해서 이 사람과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나?'라고 생각해볼 법하다.
나를 꼴불견으로 생각하는 걸 알면서도 이내 말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눈치를 본다면 구태여 상대방을 만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별의 첫 스텝이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꼴 보기 싫어지는 순간'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그 자그마한 것들이 커지고 커져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서로에게 상처뿐인 이별로 관계를 마감할 것이라면 그 관계를 마지막 스텝인 '절연'으로 마감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아닌 관계는 잘 잘라내고 새로운 사람과 교류하며 내 사람을 찾고 같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나는 그 것이 성인에게 가장 적합한 인간관계의 방법이지 않을까.
참, 왜 인간관계에서 '피로함'이 없어질 순 없는 것일까. 참 어려운 게 인간관계임을 요새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