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전 영혼이 다쳤다.'라고 늘 생각했고 더 나아가 마케터가 맞을까란 고민도 굉장히 많이 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2025년의 상반기가 모두 지나갔다.
2025년 1월, 새로운 직장에 입사하고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를 입에 달고 살았던 나. 갓생이라는 표현이 오글거려 현생이란 표현으로 하루하루를 단순하게 살아가던 나. 주 7일을 일하며 망가졌던 나의 재정상태와 건강상태를 다시 한번 돌이켰던 나. 많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한때는 지금 느껴지는 이 여름의 습도가 느껴지지 않았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지.
한 때 나는 영혼이 다쳤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에게 감정이란 사치였고 나란 인간은 푸석푸석하기 그지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땐 술을 어떻게 주 3일 마셨지? 지금 생각하면 놀랄 일들이 그땐 다 현실이었다.
그때의 나는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다. 화를 내는 것도 사치였다. 화를 날 기운도 현실 앞에선 사치라는 걸, 그냥 미친 듯이 웃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지던 그 시간들. 그렇게 그냥 모든 걸 놓아버린 삶을 수습하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영혼이 다쳤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닌, 제법 맞는 표현이었다. 난 나 자신으로 살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덕분에 나는 조금은 변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지도, 포장도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됐다. 미쳐버린 시간 덕에 얻어버린, 믿었던 사람들의 배반과 뒷담에 상처도 받았지만 덕분에 정리의 기회도 얻었다. 가볍게 보이는 것과 가벼운 것도 다르다는 걸 알았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악하는 것보다 현실의 행복을 찾는 방법도 배웠다. 도망치듯 떠난 방콕에서의 한 달은 제법 잘 한 선택이었다. 경험이 가장 큰 스승이라더니 그걸 여기 와서 배우는구나, 생각했다.
(이제 와서) 사람들은 나보고 운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결국 어찌 됐든, 나는 내가 가진 그 자그마한 품위를 지켰으니까.
그 와중에 내가 망하길 바랐던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들을 보며 이소라의 Curse란 노래를 들으며 남모를 희열을 느껴본다. 우리 둘 다 서로를 보며 자신만의 정신승리들을 하겠지. 어차피 다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거라면 찌질한 나도 그렇게 사는 것도 나를 위해 좋은 일이라 생각하곤 한다. 크고 작은 배포는 누가 정하는 거지? 그것도 너희들의 그릇에서 평가하는 거 아닌가? 사람의 그릇을 애당초 누가 정하는 거지? 많은 생각이 든다.
34살, 행복의 기준을 다시 적어본다.
이 나이쯤 되면 어디 매거진에 소개되는 반짝 거리는 인간이 돼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난 여전히 카드값을 걱정하고 법인 차량인 아담한 레이를 몰며 언덕 위 전셋집에서 산다. 야심 차게 시작한 아침 운동에서 디그니티를 운운거리며 8kg짜리 바벨에도 덜덜 거리는 내 모습을 릴스로 만들며 낄낄 거린다. 그걸 보는 내 절친은 넌 연애는 글렀다고 말한다. 뭐 어때, 그게 나인 걸. 내가 동경하던 사람들도 결국은 이 넓어터진 지구에서 비빔밥이나 먹고 있을텐데 이건 그래도 제법 귀여운 수준이지 않을까.
이젠 이 더위가 그렇게 싫진 않다. 내 옆에 누군가가 없어도 제법 괜찮다. (아닌가?) 아침에 하는 운동에서든, 직장에서든, 커뮤니티든 그냥 적당한 관계로 지내며 적당한 오지랖을 부리며 타인이 안 받아줘도 쪽팔려하지 않기로 했다. 목매다는 관계보단 혼자가 낫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누가 나를 놀리면 그냥 받아들이고 웃으며 끝내는 것도 제법 괜찮은 방법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행복의 기준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