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이 주는 미학

by 염군
출처 : F45 사당, 세림포토




요새 운동에 취미를 붙이는 중이다. 놀랄 노자다. 내 학창 시절에 체육이란 과목은 A+만 받으면 되는 과목이었고 대학교와 직장인 체육 모임은커녕, 운동은 나랑 거리가 멀다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발생하다니. 주변부에 운동하는, 대게는 예쁜 몸을 만들거나 다이어트를 위해서인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는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제법 예뻐(?) 보이는 몸을 가진, 내가 원하는 이상향의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동안은 그랬다.


2025년 상반기 신년계획을 세우며 어떻게 하면 잘 살고, 잘 정돈된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 시작한 것 중 하나 운동이었다.


처음에는 딱 3개월이었다. 그리고 태국어와 함께 시작한 운동은 그렇게 어느덧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태국어 썰은 또 다르게 풀도록 하겠다.) 4개월 멤버십이 종료되고 재계약을 하기까지, 별다른 뜻은 없었지만 나름의 고민은 있었다. F45의 비싼 금액과, 새벽 운동을 선택하면서 포기한 많은 것들 (이를 테면 4시간 수면?), 그리고 이 커뮤니티로 만난 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 유지 방법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어쨌든, 난 인간관계로 흥하고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받고, 결국 인간관계로 망가지는 인간이니까.)


어쨌든, 하반기에도 운동을 하기로 했다. 근육 빵빵이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그렇다고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는 목표의식도 없다. 그냥 또 하나의 루틴, 나의 일상에 운동을 넣은 것뿐이지 이걸로 뭘 이루겠다는 목표 따위는 버리고 시작한 지 오래됐다. 다행이지, 운동을 하기로 했다는 게.




그래서, 지금쯤 읽고 있는 사람들은 이게 왜 이 글의 제목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이제 슬슬 궁금해할 것이다.


사실, 2025년의 시작에 나는 내 인생이 잘 못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 뭐가 남았지? 너무나도 바쁘게 지나가던 그동안의 시간이 한순간에 홀드 되면서 나는 드디어 내 상태에 대한 점검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근 2년간 나에게 남은 거라곤 꼴랑 이력서 한 줄에 들어가는 잘난 이력과 무자비하게 산 옷뿐이었다. (아참, 옷은 다 나눔 했구나. 쓸데없이.) 좋은 건 딱 이 정도?


인생이 망가졌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일상이 다 '정지'했을 때라는 현실에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인생의 단순함이 가져다주는 굉장한 통찰력에 이내 감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잡하고 예민하고 특이하기 그지없는 나란 인간은, 이제껏 인생을 단순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지만 결국 모든 것의 끝맺음은 '나다움' 때문에 형성되고 망가지고 성공한다는, 깊은 통찰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 단순함이 주는 아름다움은 이러했다. 구질구질한 자학과 비난 없이도 깔끔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 잘잘못을 따지기에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차라리 그냥 도려내는 편이 낫다는 것. 그 단순함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는 부분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 단순함에서 배운 부분이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일상의 단순화였다.


평소의 나는 이랬다. 출근하고 일하고, 술 마시고, 친구 만나고. 그러다 수틀리면 돈 쓰고. (나는 그리고 파워 J이다.) 머리에 온갖 회로를 다 굴려서 오늘은 기필코 놀아야지, 돈 써야지, 술 마셔야지 란 목표로 움직였다. 사람이 복잡하면 이런 게 문제더라. 결국은 뭐라도 해내는 구실과 결론을 만든다는 것. 생각에 비해 결정을 단순하게 해 버리니 거기서 오는 결과도 다 단순하고 가벼워져 버렸다. 사람도, 물질도. 커리어에 온 힘과 에너지를 쏟아버리니 그 이후에 하는 것들은 가벼워질 수밖에 없더라. 결국 인생을 단순하게 살기 위해선 '나'를 위한 에너지 사용법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돌고 돌아 찾은 게 바로 '운동'이었다. 몸을 굴리면 생각이 단순해진다. '다치면 안 된다.', '해내야 한다.'와 같은 것. 그리고 그걸 새벽에 하면 일상은 더 단순해진다. 머릿속은 물론 복잡하다. '내일은 무조건 운동을 가야지, 아 그래 내가 여기에 돈 80만 원을 투자했지, 무조건 뽕은 뽑아야지' 등등. 새벽에 운동 가고,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힘이 나면 또 운동을 가고 피로해진 몸으로 집에 가면 바로 자고 다시 일어나 새벽 운동을 가고...

일상이 쳇바퀴 굴러가는 걸 정말 싫어했던 나지만 오히려 복잡해진 상황들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이내 기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끔찍하게 담아내는 릴스를 업데이트하면서 더 일상은 단순해졌다. (그걸 찍고, 편집하고,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들도 있을 테니까.) 내가 가진 에너지의 소모 비중에 우선순위를 두면 중요한 것에만 에너지를 쏟는 방식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점도 배운 점 중 하나였다.


덕분에 하반기가 되고 나니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금의 정리는 언젠가 정리될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잃은 것을 다시 쌓을 생각도 니즈도 없다. 비어진 것을 구태여 채울 필요도 없다는 것도 단순함이 가르쳐준 것이었다. 인생의 단순함은 사고를 비우는 게 아니라 일상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걸 깨닫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게 내가 극혐 하던 운동에서 왔다는 게 웃길 뿐이고.


그래도 나 자신을 채우는데 쏟는 시간들 덕에 얻은 건 정말 많았다. 내 체력과 건강, 그리고 삶의 윤택함. 딱 원하는 만큼의 사람들을 유지했고 그 관계의 견고함을 감사하게 여겼다. 단순함은 어쩌면 내 인생을 단단하게 해주는 열쇠였을까. 내가 그토록 원했던 단순한 인생은 결국 타인과 환경이 아닌 나를 채우는데서 시작한다는 걸 난 왜 지금에서야 깨달았을까. 지금 34살에 그걸 배웠다는 게 참 다행 같기도 하다. 앞으로의 일생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


앞으로 내 인생은 나로 인해 계속 복잡할 거고 거지 같을 거다. (난 안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일도, 사람도, 사랑도. 하지만 이 인생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하자. 생각이 많을수록, 결정할 것이 많을수록 단순하게 살도록 노력하자. 그게 34살 내가 깨달은 인생공부 중 하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행복의 기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