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깊이,
그걸 누가 평가할 수 있을까.

by 염군


“깊이감이 없는 것 같아요. 가벼워요 사람이.”


실제로 내가 들었던 말.

순간 ‘실수하셨어요.’ 라 말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드릴 말씀 없습니다.‘라고 말했던 순간.


사람의 깊이, 그걸 누가 평가할 수 있을까. 그건 그 사람의 배경, 환경,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들. 그 모든 것들을 알고도 평가하지 못하는 게 그 사람의 깊이라고 난 생각한다. 사람 자체를 평가할 수 있지만 그 사람에 대해 (성품적으로) 직접적인 피드백을 주는 게 얼마나 오만한 행동인지를 난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누군들 잘 알 수 있을까.


이제 와서 고백컨데, '피드백사건' 당시 나는 입원, 연달아 터진 2번의 장례식, 그리고 10년째 연락조차 되지 않은 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으며, 못 들을 말 들을 말 다 들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침묵을 유지했다. 말을 좋아하고 알리기 좋아하는, 오지랖 넓은 나에게도 침묵이란 패를 꺼내든 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와중에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나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모든 게 가벼운 나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었을까.


도피하듯 떠났던 방콕에서 느낀 건 하나였다고 말했었지, 가벼워 보이는 것과 가벼운 것은 다르다는 걸. 그저 칠렐레 팔렐레 노는 나를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쉽게 다가오지 못했고 어려워만 했다. 그 와중에 (다행인지는 모르겠다만) 나의 깊이감을 공감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쉽게 마음을 열고 웃으며 다가와주었다. 덕분에 나는 방콕에 사는 태국인 외에도 유럽, 미국, 중국 등 다양한 사람들과 웃으며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이게 비단 내가 가벼웠기 때문이었을까, 아님 가벼워 보이는 모습 뒤에 숨겨진 나의 면모를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지난 글에서, 난 행복의 기준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건 지금도 동일하다. 그리고 그걸 다르게 말하면 상처를 받는 기준점 또한 높아졌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정한 것에 대한 기대도, 사람에 대한 관심도도, 삶의 목적도, 인생의 지표도, 거기서 오는 상처들에 대해 무뎌진다는 게 어떤 걸 의미하는 것일까. 그건 절대 가벼운 깊이에서는 알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것이리라.


다행인 건, 가벼워 보이는 것이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나만의 기준점이 맞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거다. 그리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분명 리스크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 사람'의 풀은 넓어졌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나의 깊이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하는 사람들을 '배제'하기로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나의 깊이를 '가볍게' 평가하는 사람치고 오래 남아있을 사람은 없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람의 깊이, 그걸 감히 누가 평가할 수 있을까. 평가할 시간에 '나나 잘하자.'란 생각이 오히려 현명한 것이지 않을까. 주관적인 평가에 대해 상처받지 않을 것, 그리고 더욱 단단한 나 자신을 만들 것. 그것에 내 에너지를 쏟는 것. 사람의 깊이가 깊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들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그 평가들을 이기는 방법으로 버티는 것을 선택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애티튜드로 인해 발생할, 내가 미래에도 맞이할 수 있는 풍파를 오롯이 견뎌내려면 나 자신이 단단해져야 하더라. 그래서 나는 앞으로 40대, 50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도 있을 이 모든 것들을 견딜, 단단함을 갖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야 그 깊이를 말하지 않아도 증명할 수 있는 순간이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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