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민해 May 20. 2024

천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삶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 천선란

"한 번 외출하기 위해 남들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준비를 한다고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의지나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끝내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요. 어렵거든요. 도움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길들이 많으니까요. 누구는 쉽게 수술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 수술은 누군가에게 불가능과 같은 비용이거든요. 그리고 또 그 사람은 우리와 같은 온전한 두 다리를 갖고 싶은 게 아니에요. 다리는 형체죠.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 건 자유로움이에요. 가고자 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요. 자유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주 잘 만들어진, 오르지 못하고 넘지 못하는 것이 없는 바퀴만 있으면 돼요. 문명이 계단을 없앨 수 없다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면 되잖아요. 기술은 그러기 위해서 발전하는 거니까요."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찬란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아름다운 소설을 만났다. 장르가 SF라 망설였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올해 만난 소설 중 가장 좋았던 소설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이 소설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나에게 있어 SF 소설이란,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성이 가미된 막연한 이미지가 늘 자리하고 있었다. 굳이 온도를 담자면 차갑다 정도? SF 소설을 좋아하는 혹자는 틀 안에 갇혀 있지 않은 작가의 공상력이 SF만의 매력이라 극찬하던데, 내 경우 그 반대였다. 현실에 두 발을 딛고 단단하게 일어서는 주인공들의 삶과 이야기가 궁금했고, 그 내면을 신랄하게 파고드는 감정선이 좋았다. 한국 소설을 가장 좋아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그런 면에서 새로웠다. 장르는 분명 SF였지만, 이제껏 내 편견에 사로잡힌 SF와 달랐다. 설정은 과학적 상상력이지만, 지금 이 사회가 가진 문제들을 맹렬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시간이 아깝다며 계속해서 더 빨리 만을 외치고, 효율성과 가성비만을 따지는 요즘 사회의 목소리에 반하는 소설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가장 빨리'가 아니라 '가장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한다. 책 소개에 따르면, "SF가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예견하는 장르라면, <천 개의 파랑>은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희미해지는 존재들을 올곧게 응시하는 소설"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 ‘돈은 왜 버는가’ 같은 질문에 대해 정해진 규범과 틀이 있었습니다. 요즘엔 심각하게 여기는 사회 문제가 각자 다르고, 규범도 사라졌죠. SF는 오래전부터 인간, 사회에 대한 거대 담론을 다뤄 왔습니다. SF를 통해 사회가 무엇인지 답을 찾고, 인간은 원래 고독하다는 점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천선란 인터뷰



이 소설의 배경은 2035년의 경마장이다. 경기의 기수는 인간에서 휴머노이드로 대체되었다. 인간보다 가볍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이유에서였다.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데만 급급한 극적인 설정이다. 그곳에는 관절이 망가져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 '투데이'가 있고, '투데이'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와 기계를 다루는 일에 재능은 있지만 가정 형편으로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연재', 척추성 소아마비로 다리를 잃은 연재의 언니 '은혜', 남편을 잃고 홀로 음식점을 운영하는 두 딸의 엄마 '보경'이 등장한다.


작품 속에서는 (소수와 약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있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온다. 장애인 차별, 편부모 가정과 편견, 인간에게 선택받지 못한 동물들의 안락사, 쓸모를 다한 기계의 폐기와 무분별한 생산 등. 하나의 대상에 대한 사려 깊은 마음은커녕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요령 없다 여겨지는 가속도의 사회에 일침을 가한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순서가 살짝 바뀌긴 했지만 뮤지컬 덕분이었다. 한국적 소재를 기반으로 한 창작가무극을 매년 소개하는 서울예술단의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로워 올해 초부터 관심을 가졌던 뮤지컬이다. 정작 그 원작인 <천 개의 파랑>이라는 책은 주변인들에게 좋다는 평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읽지 않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SF라는 장르 특성상 나와 맞지 않을 것이라 속단했기 때문인데,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면서 원작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읽은 올해의 베스트 소설이 될 줄이야.


감정이 없는 휴머노이드 콜리는 애써 꾹꾹 참으며 눌러온 보경의 슬픔을 건조하고 명확하게 물어보는 유일한 존재다. 연재와 은혜, 보경 사이 끝을 알 수 없이 꼬여버린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주는 콜리의 천진난만한 물음들은 진작에 그들 사이에 나눴어야 할 대화의 일부였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느라 참고, 입을 닫고, 모른 척했던 일련의 사건들이 콜리를 통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한 가정의 진솔한 마음들이 이제야 서로에게 닿아버린 것이다.


소방관인 보경의 남편은 화재 현장을 진압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그날 다시 돌아오지 못 했다. 어린 두 딸의 양육자로 남겨진 보경은 슬픔을 보듬을 새도 없이 삶의 치열함을 견뎌내기 바빴다. 남편이 죽었을 때보다 보경을 더 슬프게 했던 건, 남편의 사망보험금 앞에서 첫째 딸 연재의 인공다리를 포기하고, 이 가정의 생계유지를 위해 식당을 선택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하던 날 밤, 문을 닫고 홀로 숨죽여 울던 보경과 문 앞을 한참 서성이다 조용히 휠체어를 끌고 돌아간 은혜가 있었다. 보경은 몰랐던 사실이다. 그렇게 그들 사이, 생략된 말들이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미안, 인간이 원래 이렇게 주책없어. 그런데 너는 그리움이 뭔지 모르겠지? 부럽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보경은 콜리가 아닌 주방에 난 창을 쳐다보며 말했다.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떼어낸다는 게 가능한가요? 그러다 죽어요."
"응. 이러다 나도 죽겠지, 죽으면 다 그만이지, 하면서 사는 거지."
보경은 민주처럼 콜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풀지 않고 더 어렵고 난해하게 대답했다.



공연을 앞둔 며칠 전, 서울예술단으로부터 러닝타임이 변경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기존 140분이었던 공연이 170분으로 연장됐다는 문자였다. 취소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지 취소수수료에 대한 안내까지 여러 번 받았다. 나는 오히려 좋아를 외치며 기대감이 더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맞이한 공연 당일, 장장 3시간에 걸친 뮤지컬을 보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책을 읽으면서 울먹거렸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뒤로 갈수록 슬픈 장면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던 터라, 1부에서 이렇게 훌쩍거리면, 2부에서는 어쩌나 싶을 정도였다. 음원이 발매되길 바랄 만큼 OST도 한 곡 한 곡 다 좋았다. 유독 기억에 남는 가사는 역시나 '천천히'로 시작되는 주제곡이었다. 공연 중에도 몇 번이나 흘러나왔는데, 공연이 끝나고 예술의전당을 나서면서도 그 가사를 흥얼거리곤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극중 연재의 역할을 맡은 오마이걸 효정의 연기였다. 이번 뮤지컬이 데뷔작이라고 하던데, 다른 연기자들에 비해 대사 전달력도, 가창력도 다소 아쉬웠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는 내내 불안하다 여겨질 만큼 몰입도를 떨어트렸다. 실은 더 쓴소리를 하고 싶지만,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어쨌든 뮤지컬 자체는 찬란했고, 이렇게 또 하나의 작품이 내 마음속에 콕 들어왔는걸.


내일부터는 드디어 시 필사모임이 시작된다. 모집 기간은 2주를 잡았고, 비대면 모임이라 큰 부담 없이 호기롭게 열었는데, 예상외로 신청자가 많아 걱정이 앞서고 있다. 어쩌다 보니 장작가님도 합류해 주셨다. 50명이 넘는 대인원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뭐 어떻게든 또 흘러갈 거라고 다시금 낙관해 본다. 내가 필사할 시집은 안미옥 시인의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라는 시집이다.


그리고 오늘, 난생처음으로 출간 제의를 받았다. 나에게 메일을 보내주신 대표님도 이 글을 읽고 계실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다. 메일을 받고 가장 먼저는 과분하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 감히 내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어졌다. 정성스럽게 제안해 주신 만큼 책임감 있게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과 확신이 생기면 답장을 드릴 예정이다. 아직은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한없이 기쁜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곰비임비 빛저운 모임이 되어가는 과정 속 해낙낙한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