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걸 알고도 사랑한다?"
"우린 죽을 걸 알고도 살아가잖아요."
"사람들이 정말 그런 걸 알고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요. 저도 죽을 거고, 사강씨도 죽을 거고. 누구나 다 죽잖아요?"
사강은 미도를 바라봤다. 그녀는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고 있는 듯한 악몽을 자주 꾸었다. 입구는 열려 있지만 출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터널이었다.
"미도 씨 말이 사실이라면 누구도 '하루하루 살아간다'라는 말은 쓰지 않을 거예요. 차라리 '하루하루 죽어간다'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루 치의 삶을 덜어내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세상에, 이런 일이 정말 있구나.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데(물론 좋은 의미로) 오!재미동이 재개관했다. 작년 초, 이곳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접했다. 여름에 방문했을 때는 오!재미동을 살리기 위한 서명서가 있길래 이름을 남기고 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지금껏 애정해왔던 여러 장소가 하나둘 사라져 가는 걸 봐왔고, 그때마다 내가 남길 수 있는 미약한 목소리에 기대를 걸었지만 다시 살아난 걸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헛헛한 마음에 마지막으로 그 장소를 눈에 담고, 서명을 하면서도 사실상 체념한 상태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일찍이 단정지었던 게 부끄러울 만큼 기쁜 소식이었다. 12월 13일에 운영을 종료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나의 메일함에 오!재미동의 뉴스레터가 도착해있어 잠깐이지만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재개관 소식.
"안녕하세요.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입니다.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이 2025년 12월 13일부로 운영이 종료되었으나,
오!재미동 운영 유지를 위한 시민분들의 노력으로 서울시의 재검토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재개관이 결정되어 다시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뭔가 한줄기 희망을 엿본 느낌이었다. 시민들의 소중한 목소리 하나하나가 모여 다시 오!재미동을 살려낸 것이다.
'이게 진짜 되긴 되는구나!'
기쁜 마음과 더불어 묵직한 감동을 느꼈다. 지금껏 내가 해왔던 여러 가지 행위가 결코 헛되지는 않았음을 증명받은 기분이었다. 다시 돌아온 소중한 장소이니 만큼 이전보다 마음을 담아 방문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무엇 하나 헛된 게 없다는 생각이 더 단단해졌다.
1월 1일에는 새해를 기념하며 혼자 창경궁을 거닐다 왔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장소를 좋아하는 편인데, 창경궁은 서울의 다른 고궁들에 비해 한적한 편이라 더 자주 찾는 곳이다. 맨 처음 이곳을 찾았던 때는 학교에서 봄맞이 소풍을 갔던 18살이었다. 새 학기가 막 시작됐을 무렵이었는데, 당시 나는 반에서 겉도는 아이였다. 반 친구들은 이미 여기저기 그룹을 만들어 부푼 마음을 안고 그날 무엇을 하고 놀지, 도시락은 어떻게 싸갈지 등을 준비하며 들떠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그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소풍 당일에는 다행히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다녔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한 시간들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창경궁은 내가 힘들 때마다 찾는 소중한 장소가 되어있었다. 특히 취준생의 기간이 길어질 무렵에는 혼자 그곳에 가서 낙엽 사이를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고, 연이은 탈락 통보에 비 오는 날 우산 속에 숨어 가만히 눈물을 참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도 가을이면 종종 창경궁을 찾았다. 혼자 갔던 적도 있고, 친구와 갔던 적도 있고, 사진촬영 원데이클래스를 신청해서 출사 장소로 창경궁을 골랐던 적도 있다. 심지어 회사에서 팀 엠티로 방문했던 적도 있는데, 그때는 해설 가이드를 들으며 창경궁의 역사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창경궁은 인조와 소현세자, 숙종, 장희빈,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와 혜경궁 홍씨 등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조선 후기 왕족들의 다사다난한 역사를 담고 있는 궁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역사적 사실은 소현세자의 이야기였다. 병자호란에서 패배하고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는 약 8년간 청에 머물다가 인조 23년에 완전한 귀국을 허락받는다. 하지만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창경궁 안에 있는 환경전에서 34살의 젊은 나이에 장례를 치르게 된다. <올빼미>라는 영화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하던데, 스릴러라 보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창경궁은 관광지라기보다는 입장료가 1,000원인 친근한 산책로이자 추억의 장소나 마찬가지다. 몇 년 전에는 야간개장도 다녀왔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창경궁의 모습은 또 처음이었다. 이곳은 대체로 사람이 없고 조용한 편이기 때문이다. 1월 1일에 방문한 창경궁도 그랬다. 관광객들이 군데군데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배가 고픈지 야옹야옹 구슬프게 우는 고양이들도 만나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들뜬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인들도 눈에 들어왔다. 모두에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키워드를 정했다. 그동안 고수해왔던 삶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향성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엇이든 정성스럽고 성실하게 해 나가는 편이었다. 다양한 걸 동시에 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에너지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걸 좋아했다. 다방면으로 재능을 가지기보다는 작은 조각 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이어 붙여 깊숙이 들여다보는 밀도 있는 삶을 지향했다. 사실 이건 어떤 특별한 노력을 기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따라오는 내 기질이었다. 활자는커녕 긴 영상조차 집중력이 떨어져 몇 배속을 하며 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외계어처럼 들렸다.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집중력이 과해 그 상황에 지나치게 몰입하곤 했다.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나를 욱여넣을 때가 많았다. 나한테는 그게 독이었을까. 생각을 달리해보기로 했다. 밀도, 정성, 몰입, 집중과 같은 키워드를 모조리 걷어내고 판을 새롭게 다시 짜고 싶었다. 그래서 정한 게 '유연'이었다. 일이든 관계든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선선한 바람이 스며들었으면 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마다 속으로 반기를 들며 되새겼다. 한 그루의 나무라도 소중히 아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근데 어쩌면 이 다짐이 지금의 나를 계속 방황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2026년의 나는 조금 더 유연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