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시 양지로 20, B103호에 '틈'이 있어요
"한 권의 책은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물건으로, 혹은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일단 세상에 나오면 책은 무한한 반복의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 책 주위에서 혹은 책으로부터 아주아주 먼 곳에서 책의 분신들이 우글거리기 시작한다. 매번의 독서는 매 순간마다 고유의 추상적인 육체를 책에게 준다. 책의 어떤 구절들이 책 전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이 떠돌아다니고, 이 사소한 구절들 속에 책 전체가 들어 있다는 듯이 여겨지기도 하며 급기야는 이 구절들이 책의 피난처가 되기에 이른다. 수많은 해설이 책을 난도질하고, 마침내 책은 책 속의 담론과는 다른 담론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야 하고, 스스로 말하기를 거부했던 것을 고백해야 하며, 떠들썩하게 꾸몄던 가식의 모습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 "이 오래된 책을 정당화하려고도, 오늘날에 재편입시키려고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 책의 진정한 기준이 되고, 또 이 책이 속해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종종 원주를 간다. 강원도라 생각하면 다분히 멀 거라는 인식이 있던데, 막상 가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정작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고향을 찾듯 매년 한 번 이상은 꼭 방문하고 있는 파주처럼, 원주도 그렇다. 그 시작은 <뮤지엄 산>이었는데, 이제는 꼭 <뮤지엄 산>이 아니더라도 원주를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친구의 책방 덕분이다. <그래서> 책방 사장님들을 통해 알게 된 친구(라기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어쨌든)가 올해 11월, 원주에 책방을 열었다. 여름에 <그래서> 책방에 놀러 갔다가 직접 들었는데 계속 이렇다 할 소식이 없길래, 준비하는 과정에서 혹시 마음을 접은 걸까 걱정하다 조심스럽게 연락했을 당시가 책방 오픈을 일주일 정도 앞둔 때였다. 반가운 마음에 책방이 문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그곳을 방문했다. 50대가 되어서도 어릴 때부터 간직해왔던 꿈을 잃지 않고, 결국은 이루어내고야 마는 친구의 모습에 내가 다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여러 동네서점을 방문해봤지만 지하에 위치한 곳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창문이 없는 건 아니고,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건물 자체가 천 근처라 위치상으로는 지하인데, 1층이나 마찬가지라고 해야 하나.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덕분에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건물을 몇 번이나 뱅뱅 돌다가 겨우 찾아 들어갔는데, 따로 연락하지 않고 방문했던 터라 서점을 지키고 계신 분은 친구가 아니었다. 그래도 뭐 어때, 괜히 부담될까 봐 부러 연락하지 않은 건데. 친구의 꿈이 실현된 공간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갔던 거니까 속상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 막 문을 연 가게 특유의 새 페인트 냄새가 났지만 그 냄새가 싫지 않았다. 상상한 것보다 공간은 훨씬 더 넓었다. 책장 구석구석 무언가를 기록하고, 흔적을 남기며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그래서> 책방처럼 문학의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비문학으로만 가득 찬 책장도 하나 있었다. 뭔가 이 책방의 결과 살짝 다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친구 수미의 남편분이 그 책장을 담당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책방을 지키고 계셨던 분도 친구의 남편분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친구도 책방으로 돌아왔다. 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며 반가워하는 모습에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전했다. 마치 도슨트를 진행하듯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자신의 서점을 설명하는 모습에 내가 다 벅차올랐다. 친구의 말투와 표정에서 이 공간을 자신만의 색으로 차곡차곡 채워가며 뿌듯해했을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작년에 원주를 갔다가 발견한 <바다에 내리는 눈>이라는 서점은 올해 6월 폐업했다. 갑작스러운 폐업 소식에 얼마나 놀라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소식을 접하고 헛헛한 마음에 사장님께 메시지를 드렸었는데, 따뜻하고 다정한 답장이 도착해있었다.
"인상적인 공간으로 기억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서점은… 네, 바다에 내리는 눈에서 운영하지 않기로 했어요.
커피와 책이라는 조합을 이상으로 추구하며 꾸려가고 있었는데, 지속 가능성 면에서 앞이 막혀 다른 방향을 모색 중이에요."
이렇게 답변이 끝난 줄 알았는데, 열려 있는 채팅창에서 계속 입력 중 표시가 돌아가고 있었다. 한참 후에 다시 확인했더니, 이어지는 문장이 도착해있었다.
"마음아프지만.. 저로서는(아, 저는 책방지기입니다) 우리 부부의 생계를 위해 마음을 접고 책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려고 해요. 앞으로는 목공 소품샵과 카페로 나아가려고 해요.
그간 서점으로 알고 오셨더라도 ‘바눈’을 새로운 눈으로 찾아와주셔도 좋겠습니다. 진정한 장소로 새삼 꾸려볼게요.^^"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고 응원하게 되는 답장이었다. 서점은 꿈과 낭만, 삶과 사랑이 있는 안온한 공간이지만 생계를 포기하면서까지 이어갈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하나둘 없어진 서점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마음은 아팠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작은 동네서점들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방문하고, 마음을 놓아두는 그 모든 과정들이 더욱 귀하게 여겨졌다. 나의 이 오랜 루틴을 잃지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하기도 했다. 이번에 방문한 친구의 책방도 마찬가지였다. 딸아이의 솜씨를 빌려 아기자기한 입간판을 만들고, 온기를 담아 잔잔하게 그 공간을 꾸려가는 친구의 모습이 좋았다. 아직은 주소조차 등록되어 있지 않은 공간이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소소한 모임을 열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는 친구의 행보를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다.
'떠나볼까 서점 여행'이라는 매거진의 글 발행은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다. 마지막으로 썼던 글이 작년 11월의 글이다.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서점이라는 공간 자체를 소개하기보다는 서점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와서였는데, 아직 그 방향성을 잡지 못했다. 꼭 글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 인터뷰처럼 담아내기보다는 소설의 한 꼭지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이를테면 휴남동 서점 같은 안온한 공간을 꿈꾸며). 방향성은 정하지 못했지만 행동은 시작했다. 얼마 전, 나의 첫 번째 인터뷰이인 <시행과 착오>의 사장님을 뵙고 왔다. 준비해갔던 여러 질문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대화가 길어졌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 하필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오고 가는 발걸음이 만만치 않았지만, 날짜를 미리 말씀드렸기에 꼭 그날이어야만 했다(약속은 소중해). 장장 2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서점과 책, 삶과 꿈 등 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어가는 주제를 부여잡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행여나 내 존재가 위협적(?)으로 느껴지실까 싶어('얘는 뭔데 갑자기 날 인터뷰하겠다고 하는 거지?'랄까), 평소 잘 꺼내지도 않던 내 명함까지 건네드렸다. 사장님은 내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다 말씀해주셨는데, 내 쪽에서 아무 정보도 드리지 않는 게 공평(?)하지 않다 여겨 부러 했던 행동이었다. 백오피스 업무 특성상 명함이란 걸 쓸 일이 거의 없는데,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내 낡은 명함도 빛을 본 셈이라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날 나눴던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완성형의 글로 풀어내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담아둔 내용이 행여나 휘발될까 싶어 집으로 가는 길, 지하철에 앉아 수첩을 꺼내 들고 빼곡히 메모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내릴 역에 도착해있었다. 정신없는 하루였지만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며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 대화 자체를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독서모임처럼. 공동의 리더님과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은 참석자 수가 없어 둘이서만 모일 때도 종종 있었지만 둘이라서 문제가 됐던 적은 없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깊이가 내가 원하는 결, 그 자체였으니까. 진지한 사유와 맥락 있는 대화,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구성해 차분히 전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시간들. <시행과 착오> 사장님과의 만남도 그랬다. 대화를 마치고 두 권의 책을 구입해 품에 안고, 서점을 나서면서 내 발걸음이 가벼웠던 이유도 그 때문일 테다. 나의 최애 작가님인 장강명 작가님의 『먼저 온 미래』라는 책 속 문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기술이 가치를 이끄는 게 아니라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
좋은 기술은 가치를 먼저 세우고, 기술이 그 가치를 따라갈 때야 비로소 빛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좋은 가치란 무엇인가'를 천천히 숙고하며 토론해 봐야겠지. 나는 여전히 책으로 소통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꿈꾼다.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은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와 미셸 푸코의 평전인데, 인간의 다채로운 모습과 더불어 적당한(?) 광기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정신의학과 철학적인 면에서). 덕분에 나의 2026년 키워드도 계속 고민 중인데, 작년처럼 두 가지 단어를 데굴데굴 굴려보고 있다. 사실 이건 내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어 더욱더 고민이 깊어진다. 이렇게 한 해가 또 저물어간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해보면, 올해는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 덕분에 차분한 연말을 이어가고 있다. 밤 산책을 할 때마다 길거리를 밝히는 색색의 전구들이 별처럼 눈에 박혀 따스함마저 느껴진다. 이 감각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남은 한 해도 고요하게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