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을 통해 얻는 여유

산책 [미션캠프 #2]

by 연구름

해가 저물기 시작할 때쯤의 혜화동 하늘을 보는 것은 내 안의 고요한 희망을 찾는 시간이다. 그리고 여유롭게 그 시간의 극장가를 거니는 것은 가장 활기찬 순간이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반가운 이들과 대화하며 거니는 사람들, 각자의 공연을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 낙산공원으로 향하거나 내려오는 사람들,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등 여러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 안에 나는 속해있다.
나는 주로 혼자 그 여정을 보내는 편이다. 서촌-북촌-혜화동-낙산-성북동으로 이어지는 풍경들은 나에게 안식을 준다. 그 안에서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조그마한 갤러리의 전시도 보고 공연도 즐긴다. 바쁘고 냉철하게만 굴리던 나의 뇌를 식히고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처음 내게 알려준 사람은 엄마였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 손을 잡고 다니며 들었던 그녀의 유년 시절과 서울의 변천사가 내가 이곳을 더 사랑하게 만든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는 나의 추억들과 감성들로 이곳을 채워가고 있다.
매일 착실히 주어진 업무들을 해치우며 인정받기 위해서만 달렸던 시간도 물론 있었다. 온전한 나를 내놓지 못하는 곳에 살다가 잠들기 전에야 ‘오늘 하늘을 본 적이 있었나’ 싶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휴가를 몇 개월 만에 쓰고 무작정 버스를 탔는데 창밖의 경복궁과 그 뒤에 보이는 인왕산과 북악산의 절경에 끌려 다급히 내렸었다. 그러고는 대학생 때 좋아했던 서촌부터 낙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무작정 걸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잊고 지내던 나의 시간들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이제는 자주 어스 푸름한 저녁의 하늘을 보며 길을 걷는다. 좋아하는 동네가 아니어도 주변 가능한 곳의 길을 말이다. 그날 있었던 좋은 일, 안 좋은 일, 감정들을 모두 내려놓고 머리를 비우고 산책하는 순간의 감정에 집중한다. 오늘 하늘을 아직 보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나가 보길 바란다. 그 순간 찾아오는 바람이 새로운 우리를 채워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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