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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Sep 02. 2022

#27. 당신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나는 한 번도 당신 자식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당신 죽음 후에야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도 몰랐던 안부, 죽어서도 몰랐던 부음. 

그리고 수개월이 지나 당신이 남긴 많지도 않은 그 빚을 떠안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해 겨울, 나는 매일 울면서 당신과 내가 엮인 서류들을 정리해 나갔다. 

처음엔 당신 이름 옆에 붙은 故 라는 글자에도 눈물이 터졌고, 가슴이 답답해지더라. 

나는 보내준 적이 없는데, '이미 잃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상속 포기 후에도 여러 유관 기관에 '나는 이 사람이 남긴 그 어떤 것도 상속받지 않겠습니다.'라는 소명을 해야 했다.



 


그 언젠가도 담담히 얘기했듯이, 

시간이 지나 그 슬픔도 옅어지고, 그저 가끔 '아... 없지. 없는 사람이지.'라는 마음만 들뿐. 

미안하지만, 나는 더는 슬프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몇 년 만에 또 당신이 남긴 빚에 대한 독촉장이 한 장 날아들었다. 


내 이름으로 날라든 독촉장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납부를 하지 않은 기억이 없어 전화를 걸어 확인 했다. 


'당신에게는 납부 의무가 없습니다. 다만, 혹시 000님과는 어떤 관계 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4년 전에 돌아가신 제 아버님입니다.'



이렇게 나는 또 한 번, 당신과 내가 부모 자식으로 엮여 있었다는 걸, 

이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해 준 사람이 당신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당신 살아서 보다, 죽어서 더 내 아버지 이더라. 


전화를 끊고, 한참을 내 이름으로 날아온 독촉장을 바라봤다.

그렇게 큰돈도 아닌데 당신은 20개월을 연체했다고 한다. 



당신,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건가... 

살아있는 동안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기관에 방문해서 직접 '소명' 해야 하지만, 어차피 납부 의무는 없다...라는 말이 계속 떠오른다. 


나는, 당신 죽어서 더 많이, 당신의 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제 아버지입니다. 돌아가셨어요.' 

'저는 그분의 딸입니다. 같이 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분의 모든 것을 책임질 의무가 없습니다. 그분이 살아생전 그랬던 것처럼요.' 



내 입으로, 당신과 나의 끊어진 천륜을 이야기하고 증명해야 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이제 예전만큼 슬프지 않은데, 

간혹 이런 일을 겪고 난 후에는 아주 오랫동안 마음이 아프다. 


당신이 세상에 남긴 내가, 

당신이 살았던 비참한 삶을 묵도해야 하는 내가, 

그리고 딸로서의 책임이 없다고 말해야 하는 내가, 너무 아프다. 




가을이다. 

그러고 보니 가을이다. 


당신이 떠났던 그 가을이 오고 있다. 




[사진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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