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부부의 동거일기
나의 아버지는 평생 책을 좋아하시고 번역도 하셨지만, 손으로 하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으셨다.
못을 박고, 전구를 갈고, 소소한 집안 수리는 언제나 엄마의 몫이었다.
손재주 좋은 옆집 남편들이 늘 부러웠던 엄마는, 내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하자 다짜고짜 물으셨다.
“못은 박을 줄 안다니?”
"그 정도야 문제없지!" 하며 큰소리치던 남자.
맥가이버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 아버지보다는 낫겠지 싶어 믿었다.
하지만 결혼 후 내가 겪은 남편은, 결코 아버지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프린터 잉크 교체도 내가 했고,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필터 청소도 내 몫이었다.
남편은 뭔가를 분해하면 다시 조립을 못 하는 심각한 기계치였다.
그렇게 큰소리치던 못 박기도, 결국은 작은 소리만큼도 못되었다.
모두들 잠든 고요한 새벽,
침실 앞 복도에 걸어둔 그림 액자가 와장창!!!
남편이 허술하게 박아놓은 못이 빠지며 내 믿음도 와장창 부서져버렸다.
게다가 일정 기간 사용하면 교체해야 하는 소모품들마저, 하필 남편 손이 닿을 때면 고장이 난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마이너스의 손이라 부른다.
반면 나는 치명적인 길치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수업 시간마다 바뀌는 강의실을 찾느라
공대, 자연대, 문과대, 교양 강의실...... 늘 친구들 꽁무니만 따라다녔다.
어느 날은 약속 장소 찾느라 시청 지하철역에서 한 시간 넘게 뱅글뱅글 돌기만 했던 적도 있다.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다르고, 부족한 부분도 다른 법.
그렇게 우리 부부는, 엄마의 세대에 이어 내 세대까지도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205호의 손재주 좋은 남편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는 맥가이버 급 사위가 둘이나 생겼으며
가까운 곳에 사는 큰사위는,
우리 집 못도 박아주고 이케아 책상도 조립해 주고 환풍기와 비데... 고장만 나면 모두 척척 갈아준다.
인생이여! 간절히 원하면
언젠가는 어떤 모양으로든 이루어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