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부부의 동거일기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굳이 저녁으로 고구마와 감자를 삶아 먹어야겠다는 남편의 고집 때문에 고구마를 사러 끌려 나갔다.
바람을 가르며 갔다 오려니까 심통이 나서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라도 한잔 사야겠다 싶었다.
남편에게 얘기하니 갑자기 발걸음이 느려지는 거다.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먼저 종종걸음으로 파리바게○ 문을 열어젖히고는 닫히지 않게 꽉 붙들고 기다렸다.
이윽고 느린 걸음으로 마지못해 다다른 남편의 등짝을, 가차 없이 가게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으로 들어가, 마침내 커피 한잔을 주문하는 나를
내내 지켜보고 있던 사장님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보통은 남자들이 문을 열고 기다리는데, 어머님은 반대로 하시네요!"
"엥? 40년 가까이 산 부부들이 남자, 여자 그런 게 어딨어요! 살다 보면 다 ~~ 이렇게 됩니다."
당당하게 대답하고는 뒤돌아 나오는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의 한 방울은
'다들 그러는 거 맞겠지? 나만 이런 건 아니겠지?
문 열어주고, 부딪히지 않도록 테이블 모서리 감싸주는, 그런 오래된 (?) 남편은 영화나 CF에 나오는 거지......'
커피 컵을 들고 갸우뚱 거리는 '쭈구리'는 나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