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 후, 수요일에 만난 인연

기다림의 시간

by 연글연글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촉'이라는 걸 무시하지 못하게 됐다. 어떤 정확한 이론이나 분명한 근거보다도,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촉'이 인생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는 내게 큰 변화가 휘몰아친 해였다. 평생에 나누어 일어날 법한 일들이 단 한 해에 줄지어 터졌다. 멀리 사는 작은딸의 결혼식을 치르자마자 아버지와의 이별이 찾아왔고, 그 슬픔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사랑하는 손녀가 먼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연이은 '잽'에 숨이 찼다. 이 나이라고 해서 슬픔에 무뎌지거나 감정이 늘 평온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회복의 시간이 젊은 날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함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 너무 힘들고 무채색이었다. 뻔한 중년의 길을 어떻게 지나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무언가 집중할 것이 절실했고, 적막하기만 한 내 주변에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을 쓰는 동안 흙탕물 같던 감정은 정수된 물처럼 맑아졌고, 별것 없는 내 글에 달리는 댓글을 보며 사람들의 온기를 느꼈다. 참 감사하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주변의 부추김에 몸이 움찔거렸다. 그러다 나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투고'라는 낯선 세상에 발을 들였다.


​하... 참 겁도 없었다. 그저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워드 작업조차 서툴러 휴대폰으로 글을 쓰던 내게, 투고라는 진입장벽은 높고도 거대했다.


지인들이 알려준 출판사 주소로 투고를 시작하고,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메일부터 확인하는 루틴이 시작됐다. 정중한 거절, 혹은 반기획 출판 제안, 어떤 곳은 젊은 편집자가 상냥하게 거절의 이유를 적어 보내오기도 했다. 편집부에서는 오케이 했지만, 마케팅 부서에서 거절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를 물었고, 활동하는 커뮤니티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랬다. 나는 넓디넓은 출판의 바다에서 너무도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투고와 홍보라는 세상은 내가 알던 상식과는 다른 규칙이 존재하고 있었다.


출간은 단순히 좋은 글을 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라, 마케팅의 주인공을 선택하는 비즈니스였다.


거대한 산에 가로막힌 기분으로 보름을 더 기다렸다. 들려오는 조언이라고는 적어도 100군데는 투고해야 한다는 소리뿐이었다. 디지털 기기에도 능숙하지 않고 에너지도 많지 않은 내가 백 군데나 에너지를 분산하다가는, 책을 내기도 전에 내가 먼저 스르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냥 한우리 선생님이나 열심히 하자.'


​포기하려던 찰나, 미련이 남아 딱 세 군데만 더 투고해 보기로 했다. 10월의 어느 수요일 오전 11시경, 투고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난 무렵 한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원고를 확인하자마자 연락하신 대표님이었다. 전화를 받는 내내 심장이 쿵쾅거렸고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글에 공감이 가고 재미있어서 작가가 궁금했다는 말씀이 들려왔다.


​하지만 곧바로 마케팅이라는 현실적인 벽이 언급되었다. 대표님 역시 판매에 대한 고민을 남기신 채 검토 후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로 통화를 끝내셨다.


다시 한 달을 기다렸지만 연락은 없었다. '내가 뭐라고 굳이 책을 내겠다고 이런 절망감을 맛봐야 하나. 그냥 살던 대로 살지.' 마음이 포기 쪽으로 굳어갈 때쯤,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 타로까지 찾아봤다. 그런데 거기서 "계약의 운이 있다, 귀인이 나타나니 적극적으로 움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대표님께 다시 한번 검토를 부탁드리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주의 수요일 오전, "판매가 안개 속이라 고민이 많았지만 일단 함께 책을 내보자"는 긍정의 답변을 받았다.


대표님이 바로 나의 귀인이셨다. 기다림과 좌절의 시간을 지나 드디어 꿈을 실현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좋은 인연은 느낌부터 다르다. 첫 통화에서 느껴지던 푸근하고 솔직한 음성에서 나는 막연한 가능성의 촉을 느꼈고, 그 촉은 곧 뜻깊은 인연이 되었다.


나의 '수요일의 인연'인 대표님은 KFC 매장 앞의 할아버지를 닮은 인자한 모습이셨다. 그 푸근한 미소로 내게 출간의 기회를 건네주셨으니, 그분은 삶이라는 겨울에 찾아온 나의 산타였다.


이곳에서 묵묵히 글을 쓰는 모든 글벗님들의 마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은 그 꿈들이 수요일의 기적처럼 꼭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이 모든 일들이 2025년 한 해에 일어났으니, 작년 한 해 내가 얼마나 많이 덜컹거렸을지 새삼 그 무게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올해는 한결 더 단단해졌으리라 믿는다.


중년의 하루하루도 젊은 날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웃으며 한 발 한 발 디뎌가면 되는 거다. 그 발자취가 곧 내가 되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