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장애 이야기
일상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건 무거운 짐을 못 드는 것도 아니고, 민소매를 입지 못 하는 것도 아닌, 손이 너무 떨려 국을 먹을 때 숟가락에 담긴 국이 절반 이상 옆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강경국물파인 나는 이 점이 죽을만큼(그정도는 아닌가) 불편하다. 단 몇 분만이라도 손에서 전해지는 약한 진동이 멎으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숟가락으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한입에 와-앙하고 먹는 일이다.
술을 즐겨하지 않고 담배는 입에 대본 적도 없는 내가 손을 떠는 일은 굉장히 억울하다. 억울해 미칠 지경이다. 손을 떠는 내 모습을 보며 나와 친한 사람(앞서 말했지만, 나의 장애를 굳이 이야기하진 않는다.)들은 담배를 이제 그만 끊으라며 농담 섞인 핀잔을 던지곤 한다. 이 손떨림을 설명하려면 그들에게 2016년 2월 2일부터의 나의 일대기를 쭉 읊어야 하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고3때 공부한다고 끊었는데 아직도 손 떠는 것 좀 봐, 하고 웃어 넘기기 일쑤였다.
병원에서는 음주를 피하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술을 아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몸 안에 알코올이 퍼져나가면 손떨림은 평소보다 심해지고 간혹 발생하던 팔의 경련이 조금 더, 아니 조금 자주 생긴다.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은 상태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내 손에 술잔이 있거나 숟가락으로 국물을 퍼먹고 있는 상황이면 의도치 않은 일들이 생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경련이 일어나기 전의 징조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두근 사이로 토도토독하며 탄산이 터지는 느낌이 1차적으로 한 번 오고 팔딱. 전조증상이 느껴지면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들에 크게 웃으면서 일부러 몸의 동작을 크게 한다. 나의 손떨림과 경련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지금 웃어서 내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을 흘리는 거야, 라며 말도 안 되는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다들 맨정신이라면 쟤 왜 저래 라고 생각할 순 있지만, 다들 이미 알딸딸한 상태이기 때문에 속이기엔 아주 좋다.
이 손떨림은 생각보다 나의 행동에 많은 제약을 준다. 청소년 시절에는 이름 날리는 예술가가 꿈이었고 어느 정도 살 만한 지경이 오니 다시 한번 그 꿈을 꾸게 되었다. 꼼꼼하지 못한 나의 성향과 늘 불안정한 대기 속에 살고 있는 나의 몸뚱이는 세밀하고 섬세한 작품들을 좋아했고 그런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큰 붓으로 거칠게 그림을 그릴 때는 나타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소녀의 머리카락, 여인의 속눈썹, 입가의 잔주름을 그릴 때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렸다가 지웠다가 색을 덮었다가 벗겨내는 이런 일련의 작업들을 수도 없이 반복하니 내 손에서 나오는 건 작품이 아닌 쓰레기들이었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신체적 결함을 이겨내고 그것을 무기로 쓸 줄 알아야 진정한 예술가가 되는 거라고. 그런데 말이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고 날 망가뜨려가며 할 바에야 멀리멀리 달아날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아름다운 손떨림이 더 이상 심해지지 않고 유지만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섬세한 그림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흘리지 않고 온전히 한입에 먹고 싶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