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그날, 세상이 멈춘 줄 알았다

품에서 멀어진 순간, 다시 품으로

by 연빈

시간은 흘러 연이의 두 돌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빚을 안고 시작한 생활은 여전히 팍팍했지만,
웅이는 한 번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더 말렸어야 했는데.”
그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졌다.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우린 그저 하루하루를 견뎠다.

연이는 어느새 걷고, 뛰고, 말은 못 해도 표정으로 다 표현하는 아이가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밝게 웃고, 제일 큰 목소리로 울었다.
그 작은 존재가 우리를 붙잡고 있었다.


여름의 한복판,


웅이의 남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은 부산의 한 회관에서 열렸다.
오랜만에 시댁 식구들이 모두 모였고,
공기에는 뜨거운 습기와 북적임이 가득했다.

나는 연이의 손을 꼭 잡고 하객들 사이를 지나며 어른들께 인사를 드렸다.
연이는 말을 못했지만 할머니를 보면 꼭 가고 싶다는 듯
자꾸 팔을 내밀며 몸을 기울였다.

“할머니한테 가고 싶어?”
나는 웃으며 물었고, 그 표정이 너무 간절해서
결국 어머님이 계신 바깥쪽으로 연이를 데려다드렸다.


회관은 여러 건물이 이어진 구조였다.
바깥에는 좁은 마당이 있고, 옆에는 작은 계단이 위로 이어져 있었다.
그곳엔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어머님께 인사드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와 결혼식 준비를 도왔다.

그렇게 몇 분쯤 지났을까.
문득 마음이 이상했다.
‘연이 잘 있겠지?’
그냥 습관처럼 확인하려고 밖으로 나갔는데,
어머니 곁에 있어야 할 연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연이요?”
어머님이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셨다.
“어머,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그 순간, 세상이 멎은 것 같았다.
나는 밖으로 뛰어나갔고,
웅이도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무슨 일인지 알아챘다.
“연이! 연이야!”
회관 안팎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누군가는 주차장 쪽으로, 누군가는 화장실, 복도, 마당까지 뛰어다녔다.
나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 시각, 회관 문 밖으로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웅이는 그 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숨이 막히고, 눈앞이 흐려졌다.

그 몇 분이 몇 시간처럼 길었다.
나는 신발도 벗겨진 채
계단 밑과 구석진 곳을 샅샅이 뒤졌다.
“연이야… 연이야…”

목이 쉬어갈 즈음,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어요! 연이 찾았어요!”

나는 정신없이 그쪽으로 달려갔다.
연이는 회관 옆 건물의 옥상 계단에서 발견됐다.
작은 손으로 벽을 짚고 계단 끝에 앉아 있었다.
그곳은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는 자리였다.

어머님이 계셨던 곳 바로 옆이었지만,
그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던 거다.
그때 한창 계단오르기를 좋아했던 때였다.

아마도 혼자 계단을 오르다 그대로 위에 올라간 모양이었다.

웅이는 달려가 연이를 품에 안았다.
그 얼굴엔 눈물과 땀이 뒤섞여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지만, 우리에게는 그날이 오랫동안 악몽처럼 남았다.

부산집으로 돌아와 연이를 재우고 나서도
웅이는 한참 동안 아이 곁을 떠나지 못했다.
그의 눈빛은 아직도 그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다신 혼자 두지 않을 거야.”
그 말은 다짐 같았고, 기도 같았다.

그날 이후 웅이는 진짜 딸바보가 되었다.
연이가 한 걸음만 멀어져도 시선이 따라갔다.
식탁에서도, 길 위에서도, 언제나 한 손은 연이를 향해 있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사랑이 얼마나 연약하고, 또 얼마나 강한지를 배웠다.
두려움의 끝에서, 다시 품 안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PS. 연빈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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