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겨울속의 새집

추위 속에서 찾아온 봄의 예감

by 연빈

연이를 잃어버렸던 그날 이후,
웅이는 정말로 연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장을 볼 때도, 식탁에 앉을 때도, 그의 시선은 늘 연이를 향해 있었다.
그 눈빛엔 그날의 두려움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연이는 말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그 작은 목소리가 처음 들리던 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듯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말을 배우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다른 생각을 발견했다.
나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도 존댓말을 쓰도록 가르치자는 주의였다.
'감사합니다, 엄마.'
'사랑해요, 아빠.'
그런 말 속에 예의와 공경이 자란다고 믿었다.

하지만 웅이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거리감 생기지 않을까? 가족끼린 그냥 편하게 해도 되잖아.”

서로의 생각은 달랐지만, 나는 조용히 설득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잖아. 존댓말은 예의이기도 하고, 사랑의 표현이기도 해.”

그렇게 우리 가족은 ‘존댓말 육아’를 시작했다.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말 속엔 자연스러운 존중이 스며들었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이 “엄마, 고마워요.”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면 세상 무엇보다 뿌듯하다.
많은 걸 해주진 못했지만, 존중과 따뜻함을 가르쳐준 부모로 남고 싶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스며들던 빌라 안,
우리는 여전히 빚에 쫓기고 있었다.
아무리 아껴도 이자는 줄지 않았다. 그럴수록 마음까지 얼어붙었다.

눈이 쌓이던 어느 날,
웅이는 파주로 출근했다가 퇴근길에 눈보라를 만났다.
자유로가 막히고 차들이 멈춰 섰다.
그날 밤, 그는 차를 돌려 회사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그의 전화가 끊기고, 나는 창가에 서서 내리는 눈을 바라봤다.
고요했다.
하얗게 내려앉은 세상 속에 연이의 숨소리만 들렸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리, 이렇게 버텨도 괜찮은 걸까.’


그리고 봄

겨울이 끝나갈 무렵, 몸이 조금 이상했다.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약을 먹기 전에 혹시나 싶어 테스트기를 해보았다.

두 줄.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기쁘면서도, 두려웠다.
이런 형편에 또 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웅이와 함께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어… 아기집이 두 개네요. 쌍둥이로 보입니다.”

순간, 숨이 멎었다.
선생님은 웃으며 물으셨다.
“혹시 집안에 쌍둥이 있으세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할머니가 쌍둥이를 낳으셨고, 내 고모도 쌍둥이였다.
하나는 어릴 때 세상을 떠났지만,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걱정이 되었는데 웅이는 얼굴이 환해졌다.
“내가 둘째라 그런가 봐. 이번엔 꼭 셋 다 잘 키우자.”
그의 말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내가 더 열심히 일할게. 당신은 걱정 말고 잘 지켜줘.”

그 말을 듣는데, 고마움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가 욕심을 부려 우리 집이 이렇게 힘들어졌는데, 웅이는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양가 부모님께 소식을 알리니 놀랍게도 모두 두 개의 인삼, 두 마리의 동물 같은
쌍둥이 태몽을 꿨다고 하셨다.
웅이는 연이 때 태몽을 꿨지만, 나는 또다시 아무 꿈도 꾸지 못했다.
나는 그게 늘 아쉬웠다.


임신 초기에는 별다른 입덧도 없었다. 그 또한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어느날 대구에 살고 있는 웅이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 돌잔치가 있다며 초대를 했다.
웅이는 오랜만의 휴식이라며 “내가 연이 볼게. 같이 가자.”고 했다.
임신초기라 걱정은 됐지만 그 말에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기차로 오랜 시간 이동하며 2박 3일을 보냈다.
몸이 조금은 피곤했지만, 웅이의 웃음이 오랜만에 편안해 보여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친구들에게 쌍둥이 아빠된다고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하지만 며칠 후 정기검진을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아기집이 하나 없어졌어요." 그 순간 귀가 멍해졌다.

“그럴 수가 있나요? 전 하혈도 안 했는데요…”

선생님은 조용히 말했다.
“가끔 약한 아기집이 다른 한쪽으로 흡수되는 경우가 있어요. 최근에 무리하신 적 있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구 여행이 머리를 스쳤다.

웅이는 너무나 미안해했다.
“내가 괜히 가자고 해서…”
하지만 나는 그저 그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하나라도 건강하게 있으니까. 그리고 선생님이 초기에는 자연스런현상이라고 하셨잖아.”

그렇게 쌍둥이 중 한 생명은 우리 곁을 잠시 스치고 떠났다.
남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는 다시 조심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 무렵,
빌라 1층에 살던 아저씨와 또 일이 생겼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했던 그 사람은 어느 날 웅이에게 소리를 지르더니 칼을 들고 올라왔다.
“시끄럽게 하면 가만 안 둔다!”

순간 모든 게 멈췄다.
그날 이후, 우리는 결국 이사를 결심했다.

경매로 어렵게 장만한 첫 집이었지만 이젠 떠나야 했다.
웅이 회사는 멀고, 경제는 더 나빠졌고, 마음의 평화마저 위태로웠다.

결국, 우리는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집을 싼값에 급하게 팔았다.

파주에 월세로 조용한 작은 주택 1층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그해 여름, 우리는 낯선 도시의 한 모퉁이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몄다.
눈 대신 초록이 가득한 계절,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조용히 사랑을 이어갔다.


PS. 연빈의 여정에 함께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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