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마을에서 두 계절이 자라는 동안
파주에서의 생활은 도시와 달랐다.
버스 정류장도 멀고, 밤이면 별빛이 또렷하게 내려앉는 조용한 동네.
하지만 그 고요함이 우리 가족에게는 쉼표 같았다.
연이를 잃어버릴 뻔했던 그날 이후
층간소음 때문에 불안해하던 일도 사라졌고,
연이는 넓은 마당에서 뛰놀며 재롱을 부렸다.
우리는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며 오랜만에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그러나 시골의 고요함만큼 이웃들의 관심은 조용하지는 않았다.
연이 손잡고 놀이터로 나가면
“새댁이 새로 왔다면서?”
“어느 집 며느리래?”
마치 온 동네가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신기했지만, 조금씩 부담스럽기도 했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동네의 대화거리처럼 느껴졌으니까.
겨울이 깊어갈 즈음,
둘째 아이도 무사히 자라며 배 속에서 움직였다.
입덧도 심하지 않았고, 연이 때보다 마음이 한층 여유로웠다.
그런데 12월 초, 정기검진을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잠시 말을 멈췄다.
“자궁이… 3cm 정도 열렸어요.”
막달이 되긴했지만 나는 진통이 전혀 없었다.
둘째라 그런지 몸이 먼저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사쌤은 “이러다 갑자기 진행될 수도 있어요.” 라고 말했고, 우리 집은 순식간에 비상이 되었다.
문제는 연이였다.
서울 친정도, 부산 시댁도 모두 일을 하고 있어 바로 맡기기 어려운 상황.
그때 웅이가 부산에 전화해 사정을 설명했다.
“연이는 우리가 볼게. 걱정 말고 얼른 낳아라.”
어머님의 그 말씀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다행히 당장 진통이 오지 않아 며칠은 준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연이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시리게 했다.
입원하는 날,
웅이와 연이가 함께 병원에 들어왔다.
연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3살짜리 아이였지만 엄마가 아파 보였는지 평소처럼 칭얼대지도 않았다.
“연아, 엄마 아기 낳으러 와서 잠깐 여기 있어야 해.
연이는 부산 할머니 집에 가 있어야 해.”
내 설명을 듣고 작은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 안녕.”
그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웅이 품에 안긴 채 병실을 나가는 작은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웅이도 기차로 연이를 데려다주며 아이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너무 마음 아팠다고 했다.
병원에서 촉진제를 맞았지만 이번엔 진행이 빨리 되지 않았다.
다음날 의사는 “며칠 더 지켜보세요.” 라며 다시 집으로 보내주었다.
괜히 연이를 일찍 보낸 건 아닐까? 그 후회가 며칠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열흘이 흐르고 12월 끝자락.
허리에 오는 진통이 조금씩 규칙적으로 시작되었다.
연이와 같은 패턴이었다.
첫째도 예정일보다 열흘 일찍 나왔으니까.
이번엔 웅이가 곁에 있었다.
연이 때와 달리 차분하게 나를 부축해주고 차도 준비하고 진통이 오면 손을 잡아주었다.
경험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컸다.
진통은 약 3시간 정도였다.
연이 때처럼 힘을 잘못 줘서 혼나는 일도 없었다.
얼굴에 힘을 거의 주지 않고 몸이 자연스럽게 도와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까만 머리숱이 풍성한 작고 따뜻한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둘째, 빈이였다.
이번엔 웅이가 직접 탯줄을 잘랐다.
그 순간 그의 눈가가 떨렸다.
“정말 잘했어. 우리 또 한 명의 아이야.”
그 말에 진통의 고통도 지난날의 불안도 모두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파주로 돌아온 집은 둘째 아이의 울음 대신,
연이가 없는 적막함이 더 크게 울렸다.
조리원에서 2주 동안 몸을 추스르며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었지만,
집 문을 열자마자 밀려오는 그 허전함은 어디에도 둘 데가 없었다.
사실 빈이를 낳았을 때 친정엄마는 전처럼 몸조리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형편을 아시는 엄마는 “걱정 말고 조리원 들어가라.”며 손에 돈을 쥐여주셨다.
그 손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조리원이 끝나고 돌아와 보니 연이가 없다는 사실이 가슴 한가운데 구멍처럼 남아 있었다.
연이는 한 달 넘게 부산 할머니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몸조리를 더 해야 하는 건 알았지만 연이를 더 떼어놓는다는 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연이가 현관문을 들어오는 순간, 그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엄마를 보고, 또 보고, 마치 믿기지 않는 꿈처럼
내 얼굴을 손으로 톡톡 만져보던 그 표정.
말은 못 했지만, 그 눈동자엔 한참 동안 쌓인 그리움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밤이 되어 연이를 재우면서 웅이가 부산에서 있었던 일을 조용히 들려주었다.
웅이가 연이를 데리러 갔을 때 연이는 아빠 얼굴을 보자마자
소리 내 울며 팔을 감싸 쥐었다고 했다.
떨어질까 봐, 아빠가 다시 떠날까 봐, 작은 손으로 웅이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다음, 웅이가 시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할머니가 잘 챙겨주셨지만 때로는 연이가 말을 안 들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그럴 거면 너네 집에 가라.” 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곤 하셨단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연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집에 못 가요… 아빠는 회사 가고, 엄마는 아파서 병원에 있어요…
할머니 말 잘 들을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웅이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새 할머니랑 지내면서 말도 많이 늘었지만,
미안하면서 기특하고, 그 어린 마음 안에서 얼마나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내 곁에서 곤히 자고 있는 연이를 바라보았다.
작은 손, 작은 숨, 따뜻한 볼을 쓰다듬는 순간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그 어린아이가 엄마 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참았을까.
그날 밤,
잠든 연이의 옆에서 나는 오래도록 아이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PS. 연빈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