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이 둘이 된 날들
연이가 집에 돌아온 뒤로,
그 아이는 정말로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한 달 넘게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나에게 더 바짝 붙어 있으려는 듯,
조금만 시야에서 사라져도 “엄마?” 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찾아왔다.
동생을 향한 마음은 순수한 애정과 작은 질투가 뒤섞여 있었다.
연이는 빈이에게 다가와 “우리 아기~” 하며 볼을 살살 만지다가도
내가 빈이를 안고 오래 있으면 슬며시 내 옆에 와 팔짱을 끼고,
“엄마, 나도 나도..” 하며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느 날은 내 품에 안긴 빈이를 보더니 자기도 얼른 인형을 품에 안고 와서는
빈이처럼 말투를 따라 하거나, 자신도 아기라고 하며 기저귀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아… 이 아이 마음속에 작은 파도가 일고 있구나 싶어 가슴이 조금 저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연이는 내가 빈이 젖병을 씻고 있으면
손을 번쩍 들고 “나도 할래요!” 하며 의자를 가져와 올라서고,
빈이가 칭얼대면 자기가 먼저 뛰어와서 등을 토닥여 주곤 했다.
질투와 사랑이 뒤섞인 마음이 어린아이답게, 솔직하게, 그대로 흘러넘치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잠깐 한눈을 파는 동안
연이는 자고 있는 빈이의 머리를 톡 건드렸다.
나는 못 봤지만 웅이가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했다.
아마도 어린 마음 속에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나눠야 한다는 두려움이
작게 스쳐간 순간이었겠지.
그러면서도 연이는 동생 우유를 들고 와 “엄마, 이거!” 하며 건네고
기저귀도 자기가 갈아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작은 질투 속에서도 동생을 향한 사랑이 오히려 더 컸던 아이.
나는 연이를 키울 때 제대로 하지 못했던 모유수유를
이번에는 꼭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빈이에게는 모유수유를 할 수 있었고, 조금씩 자신감도 생겨갔다.
그러던 백일쯤 되는 어느 날,
샤워를 하다 귀에서 피가 흐르는 걸 발견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실 귀 문제는 나에게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었다.
국민학교 시절, 어느 날 밤이었다.
귀가 너무 욱신욱신 아파서 베개를 베고 누워있기도 힘들었다.
며칠 전부터 자꾸 간지럽고, 손가락으로 쿡쿡 건드렸던 게 염증을 더 키웠던 것 같다.
귀 주변은 점점 붓기 시작했고, 다음 날 엄마 손을 잡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귀에 고름이 너무 차서 칼로 째고 빼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이 너무 무서워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잠시 나를 보더니
“계속 아플래? 아니면 지금 잠깐 아플래?” 하고 물었다.
그 질문을 듣는데 눈물이 차올라
울먹이며 “지금… 아플래요…” 하고 대답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엄마는 겁에 질린 내 손을 꼭 잡아주었고,
무섭게 생긴 마취 주사기가 다가올 때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엄마 손을 더 꽉 쥐었다.
그날 이후로, 조금만 피곤해도 귀가 시큰거렸고 귀앓이는 평생 내 몸의 약한 부분처럼 따라다녔다.
그래서 샤워 중 흐른 피를 보는 순간,
마치 오랜 시간 잠잠했던 고통이 다시 나를 덮쳐오는 듯 두려움이 밀려왔다.
병원에서는 ‘진주종’이라며 독한 약과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모유는 당장 끊어야 한다는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괜찮아. 당신 건강이 먼저야.”
웅이는 또 그렇게 말했다.
언제나처럼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사람.
빈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웅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회사…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사촌형이 운영하는 가구회사였지만 사촌이라는 이유로 더 많이 일했고,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희생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무거운 말과 박한 월급뿐이었다.
식구는 넷이 되었고, 벌어야 하는 돈은 더 많아졌다.
그런데 웅이는 밤에 누워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지친 얼굴로 “좀만 더 버텨보자”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다른 일 해보자. 마음이 편해야 오래할 수 있어.”
나의 말에 웅이는 한참을 고민하다
몇 년간 다닌 회사를 결국 정리했다.
하지만 새로운 업종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월급은 낮았고, 가정은 넷으로 늘었고, 생활비는 늘 빠듯했다.
그래서 웅이는 결국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또 일을 시작했다.
밤마다 불 꺼진 거실에서 조용히 집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
그리고 새벽에 지친모습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 시절의 우리의 살림이란…
이야기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빠듯하고, 간절하고, 투박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웅이는 정말 온 힘을 다해 네 식구를 먹이려고
버티고, 견디고, 뛰었던 사람이다.
그가 잡아주던 작은 연이의 손,
그리고 새로 생긴 빈이의 손.
그 두 손을 위해 그는 매일의 피곤을 이겨냈다.
그리고 그 날들이 우리 가족의 계절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따뜻한 쪽으로 바꿔가고 있었다.
PS. 연빈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