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들이 가르쳐준 온기
빈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집 안의 일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순둥순둥하게 웃기만 하던 아이가 어느새 제 세상을 발견한 듯
여기저기 기어 다니며 호기심을 폭발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연이가 그 작은 변화를 예민하게 느꼈다는 것.
어떤 날은 빈이가 자기 장난감을 만지기만 해도
“엄마, 빈이가 내 거 만져요!” 하고 고자질을 해대고,
또 어떤 날은 내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연이가 빈이의 볼을 살짝 건드려 놓고 “엄마, 빈이가 먼저 그랬어요” 하고 도망가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기억에 또렷하게 남은 장면이 있다.
순둥이 빈이가 바닥에 앉아 과자를 먹다가 눈이 스르르 감기며 졸고 있었는데
연이가 슬쩍 다가와 빈이가 들고 있던 과자를 빼앗아 먹은 것이다.
건드림을 당한 빈이는 그만 잠이 확 깨버렸고 엉엉, 세상이 무너진 듯 울었다.
연이는 그 모습을 보더니 또 눈을 굴리며 내 뒤로 숨어버렸다.
그 모든 장면이 너무나 아이들스러워 웃음이 났다.
그런데 또 한편에서는…
둘만의 예쁜 순간들도 많았다.
연이가 유치원에 간 사이,
빈이는 내가 개어놓은 연이 스타킹을 목도리처럼 두르고 거실을 기어다니곤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쉬울 정도다.
어느 날은 연이가 빈이를 웃겨준다고 까꿍놀이를 하다가
둘이 배꼽이 빠지도록 웃은 적이 있다.
세상의 걱정 따위 모르는 아이들의 웃음.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고단함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 시절, 웅이는 여전히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낮에는 일자리를 바꿔가며 버텨냈다.
새로운 업종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고,
결국 “배운 게 도둑질”이라며 다시 가구 쪽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도 그곳은 웅이의 경력을 알아봐 주는 곳이라 조금이라도 나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지만
건강도 그랬고, 빈이가 아직 너무 어려 도움을 줄 수 없어 항상 미안했다.
빈이의 첫 돌을 맞았을 때,
연이처럼 성대한 돌잔치를 해줄 형편도 아니었기에 집에서 작은 돌상을 차리는 걸로 대신했다.
양가 부모님들도 바쁘셨고 결국 우리 식구 네 명의 조촐한 돌잔치.
그게 지금도 빈이에게 마음 한구석 미안하게 남아 있다.
한 번은 빈이가 “왜 나는 누나처럼 사람 많은 데서 사진 안 찍었어요?”라고 해맑게 묻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세탁실에서 빨래를 널다가 갑자기 문이 ‘철컥’하고 잠겨버린 것이다.
옛날집이라 세탁실 문은 거실 쪽에서 잠그는 방식이었는데
걸음마를 시작한 빈이가 문고리에 있던 잠금 버튼을 눌러버린 것이다.
문은 열리지 않고, 전화기도 들고 가지 않았고,
당황한 나는 안에서 문을 두드리며
“빈이야, 문고리 돌려봐! 이거 돌리는 거야!”
애타게 말했지만 아직 손에 힘이 없는 아이가 그걸 열 방법은 없었다.
엄마가 안 보이니 빈이는 금세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더더욱 놀라 어쩔 줄 몰랐다.
그때 다행히 세탁실 창문에서 옆집이 보였다.
나는 거의 울다시피 소리를 질렀다.
“저기요! 여기 좀 도와주세요!”
마침 아저씨가 창문 쪽을 보다가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급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드렸다.
문이 열리고, 거실에서 엉금엉금 기어오던 빈이의 얼굴이 보였을 때—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그 얼굴이 왜 그렇게나 사랑스럽고 웃기던지.
무사해서 다행이고, 무섭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하고,
그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작은 몸으로 엄마를 찾으며 울던 아이.
그 아이의 눈물을 보며 가족이라는 게 참…
하루하루 이렇게 단단해지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PS. 연빈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