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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Mar 06. 2018

모른 척 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모르고 만난 아픔보단





숙소 옆에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누군가의 일생이 담겨 있을 것 같은 작은 집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였다. 투박하지만 곳곳에 놓여있는 소품들은 건물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자 하는 카페 주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카페에서는 핸드드립 커피만 판매하고 있었다. 직접 원두를 고르면 눈앞에서 커피를 내려준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기다리는 동안 은은하게 풍겨오는 커피 향에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커피 향이 가득한 카페를 운영하는 분들은 노부부였다. 그들은 육지에서 사업을 하다 일본에 건너가 커피를 배우고 제주도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들이 정착할 당시 이 카페는 제주도에서 드립 커피를 파는 첫 가게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제주도에 카페가 많지 않았으니 찾아오는 손님도 많고, 카페도 활발했었다. 나는 우후죽순으로 많아지는 제주도의 카페들을 보며 카페 운영이 힘들지는 않은지 물어봤다. 조심스럽게 커피를 내리던 아내분이 말했다.

 “ 제주도에 처음 내려와서 카페를 시작할 때, 마냥 성공과 행복의 마음만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어요. 물론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성공보다는 편안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실패의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생각하며 준비했어요. 카페가 많아지고 손님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힘들고 불행해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대신 제주도에 내려와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얘기해요. 멋진 모습만 바라보려 하지 말고, 실패의 순간까지 미리 마주해보고 준비를 하라고요. 그러면 작은 흔들림은 흔들림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것마저 즐기게 되더라고요.”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었다. 나는 시작하기 전에 최악의 상황을 미리 마주해보는 것은 사기를 떨어뜨리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은 그저 피해 가는 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실패와 불행을 피해 가는 것은 맞지만, 모른 척 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카페를 나와 바다를 따라 걸으며 생각을 해봤다.
나는 나에게 찾아올 수 있었던 불행과 실패를 모른 척하고 피해가기 바빴다. 때론 알면서도 그랬다. 미리 알 게 된다면 그만큼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줄 알았다. 오히려 미리 알게 되는 불행과 실패는 오늘에 감사하고, 미리 준비하며 나를 더 성장시켜 줄지도 모른다.
예측하며 흔들려봤기에 불행이 찾아오면 정말 힘들고 아플지 모르지만, 모르던 상태로 아픈 것보단 나을지 모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일기장을 꺼냈다.
이제 제주도에서의 한 달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배울 점투성이고, 힘이 되는 존재들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육지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지쳐서 도망치듯 내려온 제주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제주도에서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하며 나를 깊이 들여다보았다면, 두 번째 제주에서는 제주의 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시간이 되었다. 웃어본 지가 언제인지, 따뜻함을 느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던 내 생활 속에서 제주의 사람들은 나에게 웃음을 주고 힘이 되어 주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주변 사람들부터 천천히 웃음을 주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다.




그동안 글라글라 제주를 구독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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