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길 위에서 만났다.

in JEJU / 네 번째 날

by 도하

연분도련 캘리여행 이란?


연분도련의 생활 속 혹은 여행 속

마주치는 고마운 사람들, 장소에

즉석으로 캘리그라피를

선물하는 캠페인입니다.








어느새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매일 밤 후회하며 온몸에 파스를 바르는 일도, 자전거와 대화를 하며 제주도 위를 달리는 일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정말 말 그대로 '어느새'였다. 여행을 계획할 때, 지도에 쓰여있는 '성산읍'을 보면서 내가 여기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어느새 성산읍까지 와 있었다. 누군가 그랬었다 '여행을 하는 것은 인생과 같다'라고. 그 말에는 아마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어느새 지나가버리는 순간들이 가득한' 여행은 마치 인생과 닮았다고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순간들이 가득했고,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도 만날 수 있었고, 넓고 넓은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도 있었다. 그 순간들을 지나치고 지나쳐 어느새 끝을 마주했다.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버려서 아마 이렇게 적어두지 않았다면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 순간을 소중하게 새겨두지 않았다면 모두 '어느새' 사라져버리겠지. 인생에서 슬픈 일 조차 소중한 기록일 텐데,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존재일 텐데 구겨지고 버려져서 '어느새' 잊혀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여행을 계획할 때 읽던 책에서 '제주도의 동쪽 바다에서 또 다른 제주를 만날 수 있다'라는 글을 보았다.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이다. 처음 여행을 출발할 때, 이 말을 기억하면서 바다들을 머리에 새겨두었고, 마지막 동쪽 바다를 달릴 때, 아! 제주의 동쪽 바다라고 외쳤다.

사진을 편집할 때 이런 고민을 하곤 한다. '예쁘게 편집' 할 것인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둘 것인가. 둘 다 매우 매력적이고 나쁘지 않다. 제주도의 양쪽 바다는 마치 이와 비슷하다. 서쪽 바다는 아름다웠다면 동쪽 바다는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수수함을 보여주었다. 여행을 마치는 경로로는 매우 적합했다. 반짝반짝하지는 않지만 편안했다. 말을 걸어주지는 않지만 끝까지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는 그 바다 앞에서 어떠한 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너를 보고하는 말이었구나.







별처럼 많은 사람이 있어

작게만 느껴졌던 이곳에

가끔씩 들려오는 너의 소리에

두 손이 따뜻해지는 오늘.






여행을 하다 보니 내 곁에서 함께한 많은 것들에게 애정을 갖게 되었다. 여행 내내 내 엉덩이 밑에서 방석 역할을 해준 목도리, 주머니 속에서 응원해준 말 모양 인형, 가방 앞주머니에서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하며 지도를 켜 보느라 손 때가 탄 케이스를 입은 아이폰, 내가 어딜 가든 고장 나지 않고 버텨준 자전거.


이제는 아름다운 곳을 보면 이 작은 아이들과 꼭 함께하려 한다.

무겁다는 생각보다는 듬직하고 든든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갔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지 않고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듬직하고 든든하게 내 곁을 지켜주는 수많은 존재들과 함께 살아간다. 험난한 여행이 끝나기 전에 깨달아 다행이다.


우리 함께 아름다운 순간을 많이 많이 보러 가자. 계속 계속 함께하자.







캘리로 만난 다섯 번째 제주

웬드구니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니 입안이 텁텁해졌다. 아침을 빵 한 조각으로 때우고 나와서 조금 허기진 배와 텁텁해진 입을 채우기 위해 자전거를 세웠다. 처음에는 카페인 줄 몰랐다. 멀리서 보면 갤러리? 아니면 조금 큰 가정집 혹은 음식점으로 보였다. 마당 한쪽에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갔다.





카페는 조용하고 편안했다. 사람이 많은 것이 마냥 싫은 건 아니지만 지친 상태이기에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혼자 가벼운 식사를 하고 싶었다. 카페를 들어서자마자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카페에 들어가고 나서야 '아.. 여긴 아닌 것 같아..'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돌아서서 나오면 될 텐데 소심한 마음에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주문하는 곳으로 향하곤 했다. 하지만 웬디구니에 서는 가볍게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실용성과 디자인 사이에서 구매결정을 미루고 미루던 새모양 스텐드가 이렇게나 많이 있다니...





메뉴판을 보자마자 '자몽 샐러드'를 골랐다. 새콤달콤한 것이 필요했는데 자몽 샐러드라니! 맛 또한 맘에 들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입안에 자몽을 톡톡 터뜨리며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새로운 액자를 꺼내 카페 이름을 썼다.






기분이 좋을 때, 하늘색/민트색을 사용한다.

가볍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식사였다.

웬드구니는 '신의 선물'이란 뜻의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토속언어라고 한다.




액자를 선물해드리고 자전거에 오르려는 나에게 사장님께서 다가와 직접 만든 빵과 쨈을 건네주셨다. 감사합니다. 여행길에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나눠먹었습니다.




















캘리로 만난 여섯 번째 제주

트멍에카페

제주도에 오름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할 줄은 몰랐다. 특히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에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오르막길은 최악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많이 없다 낮은 언덕들이 많은데 다만 끝이 잘 안 보인다는 것. 트멍에 카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느 해안도로 오르막길 끝에 위치해있다.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을 것만 같은 곳이다. 그저 차만 쌩쌩 지나다니는 길가에 카페라니..... 반갑다.




컨테이너로 되어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니 여기저기 캘리그라피 엽서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사장님께서 최근 문화센터에 캘리그라피를 배우러 다니신다고 했다. 이런 카페에 캘리그라피 선물을 해 드려도 되나 싶었다.. 부끄러웠지만 반가운 마음에 선물을 써서 드렸다.




'트멍'은 제주도 말로 '틈'이라는 뜻이다. 뜸에 카페. 액자를 건네드리고 사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지나온 여행길 이야기와 사장님의 제주도 이야기. 카페에 가면 혼자서만 앉아있었는데 트멍에 카페에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보통 카페들처럼 디저트가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여행 중 생기는 틈 사이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는 행복한 카페였다.





우리는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인연을 만나고 미소를 마주한다. 트멍에카페처럼 말이다.




카페가 지도에 뜨지 않아 가까운 학교를 태그 한다.

트멍에카페는 창천초등학교를 가기 전 언덕 위에서 만날 수 있다.



나가는 글

우리는 길 위에서 만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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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이었지만

소중한 인연과 무엇보다 소중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만나 참 다행이다.


여행으로 만난 인연은 짧은 시간 동안 몇 년 사귄 친구만큼 가까워진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하는 여행자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룻밤에 나를 보여주고 나를 나눠준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이 끝난 후에도 가끔씩 연락을 하면서 마치 어제까지 함께 길을 걷던 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다. 적어도 우리는 같은 길 위에서 만났으니까. 그리고 어제든 다시 그 길 위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고마워요, 또 만나요. 제주도!

안녕! 안녕!






캘리그라피로 만난 제주도는 더 많았지만 이야기를 모두 들려드리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고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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