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새가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떠올린다.
많은 소설, 만화, 수필에서 “알을 깨는 행위”는 단순히 탄생을 넘어서, 각성이나 변화의 은유로 자주 쓰인다.
때로는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 혹은 한 껍질을 벗겨내고 더 큰 자신으로 거듭나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처음엔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알을 깨고 나온다니, 그게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30대가 되어서, 여러 악재가 겹쳐 삶을 흔드는 경험을 하면서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10대의 나는 어둠 그 자체였다.
20대의 나는 그 어둠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리고 30대의 나는 묻기 시작했다.
“난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매번 안 되는 걸까?”
나는 10대 때부터 남보다 일찍 깨어 움직이는 새였다.
남들처럼 먹이를 기다리며 울기보다, 어떻게든 스스로 길을 찾아 움직였다.
20대에는 온갖 악재를 피해 달아났는데, 도착한 곳은 아스팔트가 아닌 가시밭길이었다.
그때 알았다. 그것이 결국 내 길이라는 걸.
그리고 30대가 되어 1년간 버텨본 끝에, 어쩌면 이 세상 자체가 허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난 언제까지 피해자여야 할까?”
최근 회사를 그만두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곳에는 괜찮은 리더가 있었다. 하지만 툭하면 한숨, 끊임없는 남 탓.
자신은 늘 옳고 잘났으니, 남들은 무조건 부족하다는 태도. 적막한 사무실에 울려오는 부정적인 기운.
처음엔 내가 부정적인 사람인가 의심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모든 사람이 그의 방식에 상처 입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회성이 결여된 리더 밑에서 난 또다시 좌절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나는 과연 피해자인가?
어릴 적부터 쌓여온 정신적 고통들, 그 모든 무게.
그렇다고 해서 난 언제까지 “피해자”라는 이름에 갇혀 있어야 할까.
수습 기간을 마치고 회사를 나서며 결심했다.
“이제 난 피해자가 아니다.”
내 정신이 더 소중하다.
상처를 끌어안고 버티는 게 강한 게 아니라, 때로는 과감히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더 큰 용기일 수 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사회적 나이, 현실, 환경은 여전히 무겁게 나를 짓누른다.
하지만 ‘살아남았다는 건 강하다는 증거’라는 말을 이번엔 내가 직접 증명해보고 싶다.
인생은 팍팍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알을 깨고 바깥으로 나오려 한다.
아기새가 첫 날갯짓을 하듯이, 아직 서툴고 불안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만약 우연히 이 글을 읽은 당신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우리 함께 손을 잡고 용기 내어 알을 깨고 나가 보자.
더 넓은 세상은 아직 우리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