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 :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의 기록.
얼마 전, 감사하게도 첫 동화를 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떤 주제로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너무 컸다.
요상한 나만의 완벽주의가 또다시 발동하기 시작했다는 걸 나 스스로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동화이기에 그림의 중요성을 알지만,
글이 나오지 않으면 삽화는 물론, 주인공도 정할 수 없겠더라.
동화 쓰기는
유산 후 난임 병원을 가기까지 옴짝달싹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던 나의 1년을 돌아보게 해 주었다.
나름에 깊은 고뇌 끝에 선택한 주제는 내가 직면하지 못했던 딥한 감정과 시간이었다.
나는 짧은 어른 동화를 쓰게 되었고,
이 글쓰기가 내면에 있던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주기 시작하였다.
너무도 오랜만에 새벽까지 밤을 지새우며 글을 쓰며 그림을 만들었다.
완성 후, 상상 이상의 큰 성취감과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동화를 썼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동화이기에 덤덤하게 절제하는 톤으로 쓰려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읽을수록 발가벗겨지는 기분은 그만큼 치열하게 감정을 녹였다는 거겠지.
내 내면의 터져나오는 괴로움을 읽게 될 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면 너무도 걱정할까 봐,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이 보면 너무도 통쾌해할까 봐,
이 나만 아는 뿌듯함을 자랑할 수 없었다.
그래, 첫 작품은 습작처럼 끄적이듯 넘어가자.
다음 작품은 행복한 에너지를 뿜어 내가 작가 됨을 알려야지.
라는 생각이 일주일도 가지 못하였다.
나는 또 다음 이야기로 딥한 주제를 꺼낸다.
난중일지처럼 안네의 일기처럼 목숨의 위태로움 앞에 써 내려가는 글은 아니지만
배부른 소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 나름에 딥한 주제로 또 물들인다.
친구가 말하길,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도 첫 작품은 매우 깊고 우울하다고 하였다.
시간이 지나며 작품을 풀어낼수록
작가가 그 문제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짐을 보았다고 한다.
친구의 말대로 그 작가의 최근작으로 올수록
표지에서부터 밝은 기운으로 변화되었음이 느껴졌다.
왜 글은 아파야 시작되는가?
위 작가가 그랬고, 나뿐아니라 함께 동화를 쓰던 많은 분들이 그렇더라.
내면을 유영하며 나를 직면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과정인가보다.
그치만 아니, 이번에는 아플 수 있는 이야기를 아프게 두고 싶지가 않아서 글쓰기를 선택해 본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으나, 매 시간이 우울하진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 있을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들을 놓치지 않고 지키기 위해
결과도 모르는 일을 성급할지 모르지만 글로 먼저 들이밀어본다.
이렇게 쓰다 보면 어느 방향이든 감사함으로 해소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