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 Oct 10. 2021

언제나 마음이 문제

민음사 '인생 일력'데일리 명언 에세이 23 -2021년 1월 23일

백 년 인생에서 죽고 사는 것을 기약하기 어려우나, 
인간 만사는 마음에 달려 있으므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다. 

-최치원 <황소를 토벌하는 격문>


1. 나의 마음이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거나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호감, 신뢰가 어느 순간 단점만 보이거나 증오로 바뀌는 그 경계에는 상대의 태도의 변화와 잘못도 있겠지만 결국 그 전환의 경계에는 나의 마음이 원인으로 존재한다. 

처음에는 상대의 장점이 부각되어 보이고, 분명 그 장점은 단순히 상대의 빛나는 모습을 보고 만족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어떤 이득을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 전복되었을 때, 혹은 열 가지의 특성 중 하나의 특성이 나와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되거나 그 특성이 나에게 곤란을 빠트리게 한 경우가 되었을 때, 그때부터 나는 상대의 단점만 부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특정 사람이 도덕적으로 보편적인 불편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 나의 마음이 어느 쪽에 치우쳐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나의 마음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그것이 상대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나를 먼저 파악해야지. 아니면 죽어.

오늘 소연은 느지막이 등산을 가겠다고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천안 광덕산으로 나섰다. 늦잠을 잔 딸이 주섬주섬 산에 갈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너는 이제 일어나서 등산을 가냐며 말리지만 소연은 고집을 부렀다. 뭐랄까, 이렇게 휴일을 집에서 소모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오기를 부려 소연은 등산스틱과 물병 하나를 챙겨 차의 시동을 걸었다. 도착해보니 오후 3시, 이미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산행을 마치고 하산을 하는 길이었다. 물론 광덕산은 누군가에게는 높은 산이 아니라 소연처럼 늦게 출발하는 사람도 있었다. 날은 벌써 저물어가는 느낌, 그녀는 마음이 다급해져 빠르게 산행을 시작했다. 제대로 준비운동도 하지 않고, 자기 앞으로 먼저 움직이는 중년 남성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했어도 점심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소연은 그와 같은 속도로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등산을 시작한 지 30분 채 되지 않았을까. 계단을 오르던 그녀는 갑자기 숨이 가파오는 것 이상 터질 것 같은 기분과 함께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입과 코로 내고 마시는 속도가 심장이 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만 일시적인 어지러움과 함께 그 자리에서 푹 쓰러진 것이다. 

순간적으로 쓰러진 당사자도 놀랐지만, 앞서 가고 있었던 남성은 더 놀래서 쫓아 내려와 소연의 상태를 묻고 되물었다. 다행히도 무리한 운동으로 인한 일시적인 어지러움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소연은 알고 있었다. 본인은 오늘 하루 등산을 갈 준비가 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속도에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도. 하지만 욕심은 화를 부르게 되었고, 어리석은 행동과 그에 따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것을.


3. 죽지 않으려면, 옳고 그름 그 순간에 나에게 '격문'을 보낸다. 

최치원 초상 / 채용신, 〈최치원초상〉, 1924년, 비단에 채색, 123×73㎝, 무성서원

상대를 보는 방식,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방식, 사람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듯이 매번 옳고 그름을 선택하는 순간을 현명한 판단으로 위기를 모면하지 않는다. 사람의 단점과 실수는 공기가 존재하고,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격문'은 급히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보내는 문서를 뜻하는 것으로 <토황소격문>은 881년 최치원이 '황소의 난' 참전 중 황소에게 보낸 격문이다. '황소의 난'은 당나라 희종 연간 말기에 일어난 반란이다. 당나라 말기 환관의 횡포와 수탈, 대기근까지 겹쳐 굶주리고 삶을 이어가기 힘들었던 농민들을 대거 선동하여 당나라의 수도의 장안성이 함락돼 정도의 거대한 난이 일어난 것이다. 

신라시대에서 6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에 안주하지 않고 당나라로 유학길에 오르는 선택을 했던 최치원, 당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줄 알았던 대문장가는 당나라 후기의 절도사 고병의 휘하에 있었다. 고병은 황소의 난 토벌을 맡게 되고 최치원도 그와 함께 참전하게 되었다.  그의 격문을 읽은 황소가 너무 놀래서 떨어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필력은 난세에도 빛을 발했나 보다. 


무릇 어떤 일이고 간에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


옳고 그름을 결정하고, 결정한 대로 움직이는 마음은 결국 나에게 있다. 타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하는 것도 나의 마음이고, 소연과 같이 자신을 냉정하게 보지 않고 선택하는 것 또한 인간만사의 스스로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꽃이 되는지, 독이 되는지는 마음에 따라간 자신에게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애들 지식수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