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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달토끼 Nov 04. 2020

요양병원에 갇혀버린 할머니

창문을 통해서만 가족을 만날 수 있는 할머니

<요양병원에 면회 갔을 때 우리 가족을 반기는 할머니와 할머니 친구들 모습>


 요양병원에서 생활하시는 우리 할머니. 안 아픈 데가 없다며 당신 스스로를 '종합병원'이라고 칭하신다. 몇 년째 같은 병원에 계시다 보니, 할머니는 그 병실을 '우리 집'이라고 하신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말재주가 뛰어나서 '할머니 집'에서 인기짱이시란다.

  "내 앞에 할아버지들이 줄을 쭉 서있어. 고르면 돼!"라고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 말의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할머니는 그동안 몸이 아파도 씩씩하게 잘 지내셨다.


  우리 엄마는 소풍삼아 자주 할머니께 다녀오신다. 엄마를 따라가서 가끔 할머니를 찾아뵙고 손 잡아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코로나가 물러나기 전에는 할머니 손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가 돌기 시작하고 가족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금지된 지 벌써 거의 1년이 되었다. 이제 할머니께 면회를 가게 돼도 귀여운 우리 할머니 주름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없다. 위층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할머니를 위해 손 흔들어 드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창문을 통한 면회를 할 때, 우리 할머니보다 걸음이 빠르신 같은 방 할머니 두 분이 먼저 우리를 반기신다. 주차장 저 멀리서 보아도 가족들을 기다리며 우리 할머니를 부러워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할머니가 우리와 너무 멀리 있어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니 면회 가면 핸드폰 통화로 대화를 하는데,

  "할머니!" 하고 부르면 가끔,

  "잉~ 혜원이도 왔냐?" 하고 외사촌 이름을 부르시기도 한다. 

  '진짜 이러다 할머니가 내 얼굴 잊어버리시면 어쩌지?' 간호사들은 아쉬워하는 우리 모습을 보고는 병원에 계신 노인분들이 요즘 외부인을 만날 수 없으니 감기도 잘 걸리지 않고 건강하시다고 달래며 보낸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에겐 마음의 감기가 찾아왔다. 그럴 만도 하지, 코로나가 우리 할머니 마음속에 벽을 쌓고 있는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점점 할머니 목소리가 작고 힘이 없어진다. 씩씩했던 할머니 목소리가 그립다. 엄마는 알람을 맞춰놓고 매일 할머니와 통화하시는데, 통화할 때마다 할머니 걱정으로 엄마의 주름살이 하나씩 늘어가는 게 보인다. 며칠만 더 있으면 할머니 얼굴만큼 엄마도 주름살 부자가 될 것 같다.


  속상하지만 몸이 많이 편찮으시니 할머니를 세상 밖 구경을 시켜 드릴 방법도 없다. 우리가 할머니를 병원만큼 잘 돌봐 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매일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자주 목소리로나마 용기를 드릴뿐.


  오늘따라 유독 더욱 할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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