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진짜' 소개팅

남친 찾기 프로젝트

by 이 여름

이전 글을 보면 알겠지만, 난 이성 교제를 비정상적으로 통제하는 사이비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30이 다 되도록 남자 손은 커녕 눈도 잘 안 마주치고 살았었다. 그런 20대 후반 모솔로서 소개팅을 반복하는 과정은 정말 험난했고 아직도 ing라는 사실...


처음으로 소개팅이란 것을 시작한 년도는 24년인데 그 해는 간간이 들어오는 소개팅만 했었고 2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지인, 데이팅앱, 모임, 로테이션소개팅까지... 안 해본 소개팅이 없어 이젠 정말 기억도 안 날 정도이다. 더 가물가물 해지기 전에 내 대나무숲 같은 여기에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내 맘에 들면 상대가 별로고, 내가 별로면 상대가 나를 맘에 들어하는 게 국룰인 소개팅 시장이지만 정작 내 맘에 드는 사람은 나오지도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도 내가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는(?) 외모의 소유자가 있었다. 그 이전에도 잔잔바리 소개팅은 몇 번 했었지만 난 여기서부터가 내 진짜 소개팅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1호남. 키 183의 어깨 태평양 연하남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왔었다. 당시의 나는 연애 한번 해보지 못 한 (다시 말하지만 잔잔바리는 치지 않는다.) 모솔 그 자체의 20 후 여자였다. 사이비에서 나오고 일상을 복구하느라 이리저리 정신없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내 나이 30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애를 하고는 싶지만 방법은 모르겠던 시절, 아는 어른으로부터 소개팅 제의가 들어왔다. 친구 결혼식장에서 지나쳤는데 돌아볼 만큼 훈남이라 감사하게도 내 생각이 나셨다고 한다. (미련일 수 있는데 난 아직도 이 타이밍에 이 남자와 만난 것을 후회한다. 내가 조금 더... 폭스...? 가 되고 난 이후에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나보다 한 살 더 어리다고 해서 그 정도는 괜찮다 생각하고 소개를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때가 만 나이를 도입한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주선자도 헷갈리셔서 실제론 3살이나 차이가 나는 연하남이었다... 아마 여기서 연하남도 1살 연상으로 알았다가 나이가 더 많아서 당황을 했던 거 같다.


사진으로는 오 훈훈하네 정도였고 소개팅 경험이 많이 없던 나는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엔 화장도 꾸미는 것도 잘 못하던 때라서 굉장히 서툰 모습으로 나갔던 거 같다. 톡을 열심히 하면서 가다가 역 출구로 나와서 두리번거리는데 어떤 키가 아주 큰 훈남이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하나님 만세(무교임) 내가 딱 좋아하는 두부상에 세상에 어깨가 만리장성이세요... 사진에 실물이 안 담기는 거였다. 왜 주선자가 뒤돌아봤는지 알 거 같았다. 그날이 주말이라 사람들로 붐볐는데 거리에 여자들이 힐끔거리는 게 내가 다 느껴질 정도였다. 호불호 안 갈리는, 마다하는 여자 없을 상. 어차피 안 될 거 알았다면 맘 편하게 그 시간을 즐길걸. 너무 긴장을 했고, 모솔답게 파스타를 먹으면서 소개팅남에게 '제가 긴장을 해서 고장 났어요'라고 말하는가 하면 엄청나게 뚝딱거렸고 말주변도 없어 대화도 노잼이었다. 그와중에 장기연애를 두 번이나 했던 연하남은 매너가 너무 좋았고 적당히 설레고 간질 간질하게 분위기를 잘 이끌었다. 카페에서 손을 보는데 손까지 너무 잘생겼던 기억이 난다.(주책) 맘에 들면 직진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뭘 망설였던 걸까. 게다가 소개팅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상대를 배려한답시고 6시에 만나 8시 반에 집에 가겠다고 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한다며... 진짜 총체적 난국.


그래도, 그 이후로 연락도 계속하고 그날 내가 밥을 샀기 때문에 (누나라서 내가 사야 한다며 극구 결제함;) 다음엔 본인이 사겠다고 애프터도 받았었다. 그런데 이노무 연하남이 당일에 갑자기 몸이 좀 안 좋다는 거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난 여기서 조금 감정이 요동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자는 그냥 그 정도의 맘이였던 거였다. 그리고 나도 조금 조급했었다. 나에게 확 직진해 줬으면 좋겠는데 연락도 미지근했고 당일에 몸이 안 좋다고 하니까 그냥 약속을 미루고 싶은 건가 이러면서 혼자 온갖 상상을 하다가 결국 내가 먼저 다음에 만나자고 했다. 그러고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고 결국 애프터는 없이 첫 소개팅은 막을 내렸다.


결국 모든 것은 타이밍인 거 같다. 만약 내가 지금 정도의 소개팅 경험이 있었다면 그때처럼 그렇게 조급하지도, 연락 한 번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지도 않았을 거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소개팅에서 다시는 그와 같은 외모의 소유자는 볼 수 없었다... 하하. FA에 어렵게 나온 그를 잽싸게 낚아챌 기회였는데 그럴 깜-냥이 되지 않았던 나였슨.


다수의 소개팅을 거치면서 1호남보다 훨씬 좋은 스펙의 남자분들과 나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직진해 주시는 분들을 만났지만 내가 알게 된 사실은 하나였다. 나는 외모가 중요한 사람이구나... 샤갈.

그 사람이 박사를 했건 카이스트를 나와서 연구원을 하건 서울에 자가가 있든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가 않았다. 도저히 이 사람과 사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정말 1프로도. 그분들이 이상해서도 아니다. 나이도 나와 그렇게 차이 나지 않았고 나이스하셨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 아 머리숱이 조금 부족하신가.. 키가 조금 작으신가... 근데 그게 살아가는데 그렇게 크게 중요할까...라고 생각하며 인스타에 뜬 박보검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빌어먹을 얼빠.


이미 그 1호남께서는 진즉에 여친이 생기셨겠지만 다시 한번 만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애를 시작했을 거다. 아주 미련 철철이지만 적어도 내 이상형과 한 번쯤은 사귀어보고 싶단 말이다. 이제는 그때보다 나이도 있고 최근까지 내 소개팅에 나오는 현실적인 동년배 남자 분들을 보며 '아 나 이번 생은 그런 봉황남(aka. 봉황보다 마주치기 어려운 훈남)과의 연애는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외모를 내려놓고 다른 것을 고려할 수 있는 성숙함(?)이 생겼다며 정신 승리를 해본다. 근데 솔직히 아직도 솔로인 거 보면 여전히 타협하지 못한 거 같기도 하고... 기록용으로 시작한 글인데 왜 이렇게 씁쓸함만 남는지 모르겠다. 수많은 소개팅 썰들의 결말처럼 나도 내 짝을 찾는 날이 오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