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취향은, 낭만입니다.

제멋대로 흐르는 물결, 속절없이 흩어지는 마음.

by 사색가 연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작은 화면의 세계에 꽂혀 있다. 이제 이러한 풍경은 익숙하다. 마치 거대한 충전기 배선에 연결된 기기들처럼, 지하철 속 시선들은 각자의 화면을 통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흡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고개들 사이에 숨어 있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최단 거리'와 '최소 환승'이란 단어에 맞춰 줄을 서고, 지하철 문이 열리면 경주마처럼 역을 빠져나간다. 어디로 그리 바삐 나아가는지, 어제 먹은 점심 메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서 내일 할 일은 또 미리 걱정한다. 문제는 상실을 걷는 속도가 나이를 먹을수록 빨라진다는 점이다. 남 얘기가 아닌, 나 역시 그 흐름의 일부였다.


나는 갑자기 심술이 났다.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또 내 삐딱한 정신머리는 온몸으로 반항을 외쳐댔다. 유독 마음이 퍽퍽하던 퇴근길, 안내 방송에서 들려오는 역의 이름이 왠지 모르게 따분하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피곤한 몸을 뒤로 한 채 도중에 지하철에서 내리고 말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열차는 미련 없이 떠났고, 나는 낯선 동네의 플랫폼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나는 습관처럼 지도 앱을 켜서 현재 위치부터 집까지의 도보 시간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1시간 5분'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내 동공을 흔들었다. 효율의 잣대로 보면 이건 명백한 오답이었다. 안 그래도 일하고 난 뒤,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사서 고생을 하는 게 맞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다시 열차를 기다리며 그 눅눅한 공기 속에 몸을 구기고 싶지는 않았다. 머리는 돌아가라 말하지만, 내 발걸음은 이미 자석에 이끌리듯 개찰구를 빠져나와 지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빵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날 선 클락션 소리가 고막을 뚫고 들어왔다. 밤에도 도시는 여전히 바빠 보였다. 꼬리에 꼬리를 문 차들이 쏟아내는 배기음과 매캐한 연기, 그리고 그 사이를 바쁘게 가로지르는 오토바이들의 소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도시는 화려한 불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멀리서 보면 저마다의 색을 뽐내는 찬란한 야경이지만, 그 빛들을 가만히 뜯어보면 결국 누군가의 야근이거나 꺼지지 않는 편의점의 불빛 혹은 퇴근을 잊은 채 돌아가는 사무실의 모니터일 터. 멀리서 보면 희극일 야경도 가까이서 보면 누군가의 묵직한 노고일 테다.


나는 소음이 쏟아지는 거리 한복판에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나 또한 이제까지 저 불빛들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얼마나 숨 가쁘게 발을 굴렀던가. 일의 성과가 곧 나의 존재 증명이었고, 속도는 곧 능력이었다. 스스로를 '불완전한 완벽주의자'라 이름 붙이며 늘 나 자신을 채찍질해 왔다. 심지어 지금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기라 더욱 그랬다. 일하랴, 공부하랴, 졸업 준비하랴, 논문 쓰랴. 때문에 브런치에서 연재하고 있던 소설 하나도 내팽개쳐버리곤 하루 종일 시간에 쫓겨 지치던 터. 지금 이 상황에서 가만히 멈춰 서 있는 시간은 곧 '정체'이자 '도태'였다. 아니라고 말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나 자신은 그것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촘촘했던 강박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1분 1초를 다투던 지도 앱의 예상 도착 시간을 비웃듯 발걸음의 속도를 스스로 결정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푹 한숨을 내쉬곤 스마트폰을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불빛들 사이로 아주 천천히 가로지른다.


낭만이란 게 뭘까. 한자 그대로 뜻풀이를 하면 물결 랑(浪)에 흩어질 만(漫)으로 쓰인다. 그리고 물결을 뜻하는 '랑(浪)'자엔 '내키는 대로, 함부로'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만(漫)'자는 물결이 넘쳐흐르거나 흩어지는 풍경을 그린 한자로 '질펀하다, 아득하다, 방자하다'라는 뜻도 품고 있다. 효율이 점을 찍고 선을 그리는 이미지라면, 만(漫)은 수채화 물감이 번져나가듯 경계를 허무는 이미지다.


낭만(浪漫)이란 단어를 하나하나 뜯어본다. 제멋대로 흐르는 물결. 나는 속절없이 흩어지는 마음이라 읽겠다. 경계 없이 번져가는 비효율의 축제. 나는 갑자기 그 축제를 즐기고 싶어졌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정해진 수로를 벗어날 용기와, 시간을 효율이라는 그릇에 가두지 않고 기꺼이 흩뿌릴 수 있는 방자함이 아닐까.



실제 밤에 걸으며 찍은 골목길 사진


걷다 보니 별생각이 다 밀려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몸은 분명 고단해져 가는데 마음은 오히려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이 홀가분함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잠시 현실의 무게를 내려놓은 채, 길게 늘어진 밤의 그림자들과 보조를 맞추며 춤을 추듯 걸었다. 새로우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거리의 풍경들을 지나가며 구석으로 밀어두었던 삶의 조각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다시 선명하게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잊고 있던 취향이었다. 예전엔 틈만나면 밖으로 나와 산책을 했던 나였다. 아, 이참에 취향이란 단어도 한번 뜯어보기로 한다. 취할 취(取)에 향할 향(向)이 더해진 이 단어는 내 마음의 창문이 나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낭만은 어떻게 흐를 것인가를 묻고, 취향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묻는다.


정확히 한 시간 뒤, 나는 현관문에 들어섰다. 신발을 대충 벗어 던지고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진 몸 위로 하루의 무게와 한 시간의 보행이 겹쳐졌다. 종아리는 팽팽하게 부어올랐고 발바닥은 기분 좋게 화끈거렸다.


객관적으로 보면 미련한 짓이었다. 내일 아침의 컨디션을 걱정하면서도 밤의 끄트머리에서 한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고 온 셈이니까. 하지만 천장을 가만히 응시하는 내 마음엔 이상할 만큼 빽빽한 충만함이 차올랐다. 화면 속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세상이 아닌 내 발바닥의 통증으로 직접 확인한 진짜 세상. 그 무용한 걷기 끝에 비로소 잊고 있던 나의 취향을 다시 맡을 수 있었다. 비효율로 꽉 채운 이 밤이, 그 어떤 가성비 좋은 휴식보다 나를 더 깊이 숨 쉬게 했다.


그렇지, 사는 건 정답이 없었어.


정해진 수로를 벗어나 마음껏 흐르고, 내가 사랑하는 가치를 향해 기어이 달려가는 일. 효율이 정답이라 말하는 세상에서 기꺼이 나는 매일 조금씩 손해 보며 살기로 한다.


오늘부로 제 취향은, 낭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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