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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주인공이라는 착각

by 사색가 연두

한 밤중에 길을 걷는 도중, 갑자기 환한 불빛이 켜졌다. 나는 어느새 무대에 올라서 있었다. 가로등의 불빛이 나를 비춘다. 나만을 비춘다. 순간 무대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가만히 서서 관객석을 쳐다본다. 주변엔 아무도 없다. 가로등의 불이 꺼졌다. 난 어둠 속에 홀로 선,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외로운 관객이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의 일부다. 아마 지금쯤 이 가사가 어떤 노래의 가사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원래 나만 아는 노래였는데, 어느새 꽤 유명해진 모습이다.


우리는 어렸을 적, 모두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 배웠다. 모두가 소중하고, 하늘의 별같이 반짝거리는 존재들이라고. 그러니 꿈을 마음껏 펼치라고. 이처럼 나와 같은 2030세대들은 노력하면 뭐든지 다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의 교육 아래 자라왔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성인이 되어서 아는 것도,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많아졌다. 세상에 대해 알면 알 수록 나 자신은 더 작아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제야, 깨닫는다.


'아, 나는 정말 별 볼일 없는 한낱 미물 같은 존재구나.'


환상의 교육을 받고 자라온 세대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나는 특별해.'라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거대한 착각 속에 빠져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장할수록, 이 거대한 착각은 되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선사해 주며 나 자신을 괴롭힌다. 우주 한 점에도 모자란 인간이라는 미물이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어떤 분야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무슨 일을 하든 나보다 운 좋은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어떤 일이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나를 좌우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잔인하게도,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은 본인 능력 밖의 영역에 의해 돌아간다.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는 인생이란 건 뭘까? 성공하는 사람들은 왜 자만하며, 실패하는 사람들은 왜 자책을 하는 걸까?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다만 양극화는 날로 심해져 가고 있으며, 현재 젊은 층의 사람들은 확실히 전체적으로 기가 죽어있다. 그들은 왜 사회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걸까? 왜 방구석에서 자기 자신을 숨기며 젊은 세월을 날려 보내고 있는 걸까?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라는 것과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온전히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자만이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건 착각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잘났다고 해도, ‘세상의 주인공’은 될 수 없다. 애초에 세상은 자신을 비춰주지 않는다. 그러니 성공한 사람들은 겸손해질 필요가 있고, 실패한 사람들은 자책할 필요가 없다. 노력이라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 척도가 분명하지 못하다. 그래서 실은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거야."라는 말을 함부로 뱉어낸다는 것은 정말 무례한 짓이다. 상대방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말은 굉장히 무책임하게 남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일이다.


<철봉>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얼핏 보면 성공은 '고민'과 비슷하고, '성장'은 사색과 비슷하다. 성공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르며, 그 기준과 척도도 명확하지 않다. 누구는 돈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보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성공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장은 지금 본인에게 명확하게 다가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물론 사람마다 성장의 과제는 다 다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어렵고 힘들어하는지,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본인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색으로 생각을 앞당긴다면 성장의 과제는 더욱 명확해진다. 하지만 성공은 당장 앞당겨 행동할 수 없다.


자, 이젠 여기서 '내가 내 삶의 주인공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사색을 통해 성장을 이루어내는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반면에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막연한 착각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사실 가로등의 조명은 길을 비춰줄 뿐이었지, 나를 향해 비춰준 것이 아니었음을. 고로 우린 모두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우주 안에서 별은 수도 없이 많다. 광활한 그 공간 아래에선 밝은 빛을 내뿜는 별들도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저 티끌일 뿐이다. 어쩌다 보니 생긴 것이고, 존재에 대한 이유가 딱히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의미를 탐구하지 말자.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대지 말자. 그냥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볼까에 대해 사색해 보자.


물론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일은 당연히 두렵다.


하지만 가로등의 불빛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 빛이


자신을 비춰주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아침이 되면 태양이 우릴 모두 비춰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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