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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un 05. 2023

올바른 방법(1)

#3. 각자 다 이유가 있더라

꿈에 그리던 기획자로 취업에 성공했다.


사실, 취업에 성공한 건 작년 8월이었다.

거의 일 년 만에 돌아오게 된 변명을 하자면,

새로운 분야의 신입사원으로 환승한 덕에 바빴달까?

(업무 적응, 기획 스터디, 아마추어 작품 연재까지 정신이 없었던 건 진짜였...)


많은 소개팅에서 실패했던 경험을 지난 글에 담아냈는데,

놀랍게도 그 글을 발행한 이후로는 줄줄이 합격 소식을 받았었다.


어느 회사와 애프터를 진행해야 할지 고민하다 끝내 어느 정도 서비스를 갖추고 있는 스타트업을 선택했다.




망해보고 싶어서 선택했어요:)


필자가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고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한국이 아닌 해외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2. 리소스 규모에 비해 제공하는 서비스가 많다.

3. 고칠게 많아 보이는 구 서비스들을 방치한 채 신규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위 세 가지 이유를 보고 나면 다들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할 것이다.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어서 고른 것 같아!/


맞는 말이긴 하다.

다만, 그 다양한 시도에 주목적이 '망해보는 것'이라면 조금 특별하게 보일까?


꽂히는 건 뭐든 해야 하는 성격 때문에 당시 거액을 부른 회사도 마다하고 제일 적은 페이의 회사를 골랐다.

지금도 이 부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면접 때, 서비스가 부흥하는 만큼 인센티브로 결과를 산정해 보자고 협상을 하지 않았다면 후회했을지도...)


필자는 부트캠프를 수강할 때부터 새로 만들기보다는 고쳐쓰기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자고로 기획자라면 자신이 만든 서비스가 소비자들에게 애정을 받을 때 가장 뿌듯함을 크게 느낀다고 하는데... 독특한 성향을 가진 게 분명하다.)


남이 잘 만들어둔 서비스의 흠을 채워주는 걸 UX 개선/보완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남들이 놓친 불편함을 마저 채워주는 쪽이 훨씬 흥미롭고 일에 대한 열정이 샘솟는 타입이다.

그래서 현재 회사를 선택했다. 고칠게 참 많은 서비스들 같아서.


남들이 놓친 불편함을 채우고 싶다면서 망해보고 싶다?

앞뒤가 안 맞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는 거 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분야에서는 왕초보와 다름없는 신입이다.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고친다고 해서 그 서비스가 꼭 살아난다는 법은 없다.

그래서 맘 놓고 고쳐보고, 폐기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수만 가지의 방법 중 가장 올바른 방법은?


현재 회사의 기획자는 놀랍게도 필자와 사수, 그리고 제일 바쁜 대표님까지 단 셋 뿐이다.

그에 비해 서비스는?


이미 론칭한 서비스만 해도 7가지는 되는 상태였다.

이 와중에 사수는 또 다른 신규 서비스를 기획 중이라 필자에게 많은 관심을 줄 수 없었다.


현 회사의 구조를 살펴보면, 개발과 기획은 한국에서, 운영과 그 외의 부분은 현지의 외국인 분들이 담당하고 있었고, 모든 분야의 의사결정권을 대표님 혼자 가지고 있다 보니 불편한 게여간 아니었다.


기획, 운영, 투자, 비즈니스 파트의 모든 문제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대표님을 거쳐 결정이 되었는데,

빡빡한 미팅 스케줄 때문에 대표님과 편히 개선 방향을 상의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기존 서비스를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대표님 단 한 명이란 사실이 가장 불편했다.

개선 포인트를 도출해 내기에 아는 정보가 너무 적었고,

직접 유저가 되어 보기엔 해외라는 환경적 제한 때문에 쉽지 않았다.

(변명이 아니라 해외 번호를 개통해서 유지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정말로.)


그래서 필자가 선택한 방법은 아주 1차원적인 방법인 '알아서 찾아내기'였다.


갑자기 큰 거래 금액이 걸렸다며, 다운로드 프로세스 연동 개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자사에서 판매한 쿠폰을 특정 브랜드 앱에서 등록 및 사용할 수 있도록 다운로드 플로우를 개선하는 것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기획서 한 장 남아있지 않는 기존 서비스 플로우를 알아내기 위해 현지팀에게 매뉴얼을 묻고, 직접 화면 별로 들어가 모든 기능을 눌러보고 살펴봤다.


그렇게 일주일 간 기존 프로세스 파악 및 타사 프로세스 비교안을 작성해 대표님과 미팅을 가졌다.


"사용 애플리케이션과의 연동성을 위해 이를 연동해 주는 화면을 추가하려는 어떠신가요?"


문서 양식도 없는 스타트업 특성을 고려해 나름대로 회의 요약본까지 만들어가며 의견을 피력한 결과,

돌아온 대답은 이 한마디였다.


"굳이 새로운 페이지를 추가해야 하나요? 기존 페이지에 추가해도 될 것 같은데?"


두둥. 일주일의 노력이 사라졌습니다!

슬프긴 하지만 분석을 잘못한 스스로를 탓해야지 누굴 탓하겠는가. 다시 내 기획서를 뜯어보았다.

저런 피드백이 나온 이유가 있을 거라며 생각을 여러 방면으로 해봐도 납득이 되질 않았다.


수동으로 다운로드해야 하는 기존 프로세스에 자동 다운로드 연결 링크를 넣자고?

이미 안내사항 텍스트가 넘쳐나는 화면에 연결 링크를 쑤셔 넣는 게 맞다고?


할말하않 할 수 없는 성격 상 입이 근질근질했다.

더 나은 대안을 찾아보기 위해 이틀정도를 더 소요하고 나니 이렇게는 시간만 낭비라는 판단이 들었다.

(일정시간 이상 계속 붙잡아봤자 리소스 낭비라는 걸 과거 막내 시절 깨우쳤기 때문에...)


사수에게 SOS도 보내보았지만, 자신은 모르는 영역이란 대답을 얻었다. (이때야말로 할말하않했다.)

그래서 냅다 대표님께 돌진했다.


"타사의 80% 이상이 자동 다운로드를 메인으로 하고 수동 다운로드를 별도 안내하고 있는데, 왜 수동과 자동을 동등하게 표기하려 하시나요?"


이번에 들은 대답은 과연 무엇일지 예상이 되는가?

바로, 그럼 우리도 그럽시다. 그럽시다였다!!!!


좋아하기보다는 허탈감이 먼저 들었다.

무슨 설득이 이렇게 간단하지? 이전의 의사결정을 까먹었나?

분명 이전에도 타사와의 비교안을 제시한 뒤 의견을 어필했었는데 그새 마음이 바뀌었나?

(사실 우리 대표님은 굉장히 직감적인 기획을 하는 분이기에 정말 마음이 바뀐걸지도...)


필자가 놓친 부분은 바로 물음으로 돌아오는 피드백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시 되짚어보면, 대표님은 해당 건에 대해 안된다고 퇴짜를 놓기보다도 왜 그렇게 변경을 해야하는지 납득하지 못한 부분이 더 컸다.


이 때의 경험으로 같은 자료도 표기하는 방식,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상대가 어느 집중하는 부분이 달라진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같은 재료로 다 다른 맛을 내는 능력이란 거...)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다.

이들 중 가장 올바른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 '어떤 이유로'/ '어떻게'


전달할지는 명확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줄줄이 나열한 정보는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상대에게 그저 가볍게 지나치는 정보에 불과하다.


정보의 물결 속에서 가장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방법은 내가 원하는 걸 상대도 원하도록 손에 잘 쥐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의 손에 여러가지를 쥐여준 다음에는 어떤 것을 고르는 게 가장 올바른 결정일까? 

다음 편에서는 여러가지 정보 속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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