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 Outside the Box!
새해가 여느 때처럼 찾아와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커피숍에서 아들들하고 새해 계획표를 작성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때에도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치부하며 ‘나는 잘 살 거야’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며 '새해'라는 말을 마음 구석 어딘가에 처박아 놓았다. 그러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올해는 청룡의 해'라는 아내의 말에 문득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즉, 내가 '용띠'이기에 잊어버렸던 내 나이를 정확히 인지함과 동시에 조바심이 났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변화할 시간이……
최근에 본 영어문구가 갑자기 생각났다. It’s definitely time for a change.
공부만 하는 MBTI 대문자 I였던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 후 처음으로 동아리에 가입해서 춤과 연극, 합창을 하고 동아리 부단장으로 3개 연합 학교를 이끌었던 시기가 있었다. 극소심 학생에서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학생로 탈바꿈했던 첫 번째 변화의 시기였다. 다음으로 수능에 실패하고 원치 않은 대학교에 들어갔던 대학시절이 두 번째 변화의 시기였다. 입학하자마자 당돌하게 우리 학과(영어영문학과)의 비전을 물어보며 선배들의 노하우와 삶을 흡수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던 시기였다. 대학생활은 모두 낯선 만남과 경험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나는 무척 설레어하면서 즐겁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 후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한다며 서울 노량진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고 미래를 준비했던 세 번째 변화의 시기가 있었다. 제한된 자금과 시간으로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고자 하였기에 서울을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고자 했었다. 운 좋게 7개월의 공부만에 합격하였자만 익숙한 고향이 아닌 추자도에서의 3년 간의 생활이 네 번째 변화 시기였다. 따뜻한 미소로 받아주신 선생님들, 순진하면서도 섬 생활을 통해 어른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학생들, '섬마을 선생님'노래를 연신 부르며 내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던 학부모님들과의 3년은 다른 신규 교사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로 옮겨 대학교육협의회, 제주진학협의회 등의 활동을 하던 중 여러 선생님들과 진로 진학을 모색하고 경험을 공유했던 시기 역시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만 해도 각 학교 간의 숨길 수 없는 진학실적 경쟁으로 서로 간의 협동을 기대하기 어려워하였는데 이러한 활동은 나에게 공유와 소통이 더 큰 파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었고 대학입시를 보다 큰 틀에서 바라보게 해 주었다. 이후 교사 집단의 막내에서 벗어나서 농어촌 고등학교에서 저경력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하며 학교의 발전을 고민하고 실행에 옮겼던 시절은 나를 한 단계 더 성장하게 하였다. 농어촌 학교라는 한계에 그저 체념하기보다 그 특수성을 살리고자 지역 연계 활동을 전개하였고 밤늦게까지 같이 수업한 결과 학교 동문회에게서 감사패를 받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런 자신감과 자만을 크게 부수었던 지난 학교에서의 입시 실패와 이를 다독여주었던 후배, 그 직후 새 학교에서 경험한 고교학점제의 철학은 나의 교직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즉, 진로진학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삶까지 생각하는 교육과 대학 입시보다는 고교 생활을 더 들여다보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새로운 선생님들과 함께 세대 간 소통과 협력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변화라는 것은 결국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즉 타자와의 조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상시 동네 산책 및 운동할 때 맨날 걷는 코스가 있다. 그 코스를 따라가면 5~6km를 걸을 수 있고 1시간 내외에서 운동을 마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더 이상 살이 빠지거나 운동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코스의 다변화를 시도했더니 우리 동네를 좀 더 샅샅이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못 보던 맛집이 보이고, 밤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깨달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운동 효과에 좋은 가파른 언덕과 내리막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고행처럼 나를 만나는 세계를 탐색하며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낯선 타인과의 만남과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변화를 맞이하는 세계도 중요하다.
새로운 학생들과 새로운 선생님들과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우리는 거듭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음을 비로소 느낀다.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이 1년 주기로 매해 비슷하지만 매년 3월이면 설렘과 두근 거리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나와 다른 것을 경험하고 나 이외의 세계에 조금씩 발을 내딛느냐의 차이에 의해 거듭남과 변화의 크기가 결정될 것이다.
'익숙한 곳에서 점점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의 내디딤. 그러면서 나의 중심을 기본으로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여정이 거듭남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