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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호 Jun 06. 2024

IB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2)

2) 학생들의 시선

여기서 근무한 지 벌써 3개월(2024년 6월 기준)이 지났다. 아직은 학생들에 대해서 모두 알고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근무기간이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다. 그래서 3개월 간 내 수업에서 관찰한 학생들을 위주로 지극히 주관적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하길 바란다.


내가 교직 생활을 처음 했을 때 같이 근무하게 된 어느 선생님의 첫마디가 아직도 충격으로 생생하게 기억난다.
‘교사는 싸움할 줄 알아야 돼! 너 싸움 잘할 수 있냐?!’
‘?’……‘
‘교사는 싸움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맞서 싸우려면 말이야! 내가 여기 오기 전에 표선상고(지금의 표선고)에 있었는데 문제아들을 학교 옥상으로 불러 내가 다 교통정리했다.’ 하시면서 의기양양한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더 거친 표현이었지만 이 정도로 순화해서 얘기하겠다.)

(그러나 이 얘기는 2001년도 이야기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분은 그 후 나에게 교직생활에서 유용한 많은 팁과 교직관을 형성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셨던 분이다.)


그렇다! 아직도 제주도내에서의 표선고등학교는 이와 같은 이미지가 남아있기에 지금의 표선고를 본다면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먼저 학생들의 수준은 어떨까?

위의 에피소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전 표선상업고등학교 시절 이후 지난 20여 년간 내가 알았던 학생들의 수준과 비교하면 격세지감, 천지개벽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학생들의 모습들이 달라졌다. 사실 나는 전문계 고등학교를 근무한 적이 없는 다소 샌님 같은 교사 생활만 해 온 자로, 전문계 고교의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곤 했었다. 만약 예전의 표선고등학교라면 역시 두려움을 안고 어려운 교사 생활을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우도 잠시, 일단 수업은 어느 정도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여기서 수업이란 IB수업을 포함, 내 영어 교과의 정상적인 수업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학생들의 학습 태도와 수준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거보다 향상되었다. 물론 예전 표선상업고등학교 학생의 느낌이 물씬 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교육부 장관이 올해 초 학교를 방문했을 때 염색한 표선고 학생을 보고 흠칫 놀랐다는 후문도 들렸다. 일반 타학교 학생들처럼 공부하기 싫은 친구, 지각하는 친구, 무단 결석하는 친구, 마음이 아픈 친구, 몸이 불편한 친구부터, 기본적인 수업 태도가 부족한 친구들도 여럿 있다.

중요한 것은 IB학교 학생들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일 것이다. 여기는 국제학교가 아니며 그렇다고 영어 중점 학교도 아니다. 또한 대안학교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기존의 농어촌 학교에 IB라는 특별한 자율적 교육과정이 도입된 - 이제 4년 차인-학교일 뿐이다. 학교와 학생들이 변하면 얼마나 변했을까? 하지만 급격한 변화는 없지만 서서히 긍정적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사실이다.


보통은 표선면 인근의 중학교에서 주로 입학하지만 이제는 제주도 전역에서 입학하는 추세이다. 올해 내가 3개월 동안 받은 전화를 생각했을 때 전국적으로 입학 및 전학을 문의하는 전화가 폭주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다 학교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어제는 캐나다에서도 전화가 왔고 강원도에서 직접 학교를 방문하여 입학 및 전학 상담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문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학부형들에게 꼭 묻는 것이 있다.

왜 오시려고 하나요?


대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질 수 있는데 첫째는 올해 초 발표된 입시 결과에 대한 기사의 후폭풍으로 인해 좋은 대학입시 결과를 목적으로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 (입시 결과에 대해서는 따로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다음 이유는 정반대의 경우인데 대한민국의 입시 경쟁, 사교육 경쟁에서 탈피하여 아이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찾는 전화도 많았다.(이 부분은 솔직히 방송 등의 매스컴 영향이 큰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국제학교, 해외 중학교 졸업자 등 우수한 학생들도 더러 있으며,  중학교 내신 역시 기존에는 지원하면 100% 합격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입학 경쟁률도 날로 치솟고 있다.(아마 내년 신입생은 제주시 입학 경쟁 수준의 내신 기준까지 올라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또한 표선중학교, 성산중학교에서 입학하는 경우는 미리 IB를 경험하고 오는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각종 탐구활동, 발표수업, 강연 등의 질의응답 시간에 두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의 영어수업 모습을 살펴보면 프리토킹이 가능한 학생들부터 기본적인 단어를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학생들까지 다양하다. 후자인 경우 어떻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보냈는지 걱정이 앞서는 학생들이기도 하지만 정말 착하고 열심히 해보려는 태도가 예쁜 학생들이다. 그 학생들 중에 정말 단어 하나도 모르는 남학생이 있었는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책을 읽고 있으며 이 정도 책은 읽어야겠다는 말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인 학생이었다. 그리고 원어민 영어수업 시간에도 나름 해보려고 나에게 계속 영어단어를 질문하며 적극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였다. 어떤 여학생은 쉬는 시간마다 원어민 선생님에게 자신이 공부한 학습자료를 보여주며 영어 표현을 공부하고 이를 다음 시간에 활용하기도 하고 그저께 야간 자습시간에 처음 보는 나에게 입시 상담을 요청하며 자신의 공부 계획과 방법이 괜찮은지 한참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아마 예전에 이 학교를 근무한 선생님들에게 이 얘기들을 들려주면 학교가 정말 많이 변했다며 놀라실 것이다.)

일반 고등학교와 가장 큰 차이점을 보여주는 대목은 아마도 3학년 학생들의 수업이 아닐까 한다. 대한민국 일반고에서는 지금쯤 EBS수업교재를 중심으로 교사 중심의 수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교사도, 학생도 모두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영혼 없는 수업의 모습들을 나는 지난 10년 동안 경험해 왔기에 감히 지금의 표선고 3학년 수업과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고등학교 3학년 수업에서도 발표수업과 모둠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이게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하지만 수능에 종속되어 있는 일반 학교에서는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들이다. 그와 같은 모둠 수업 기반의 발표, 토론, 보고서 작성 등의 수업을 3학년 시기에 했다가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심지어 동료 교사들에게도 질타를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수준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수업 시간에 대한 집중도와 참여도는 여타 학교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나는 여기서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내년부터 달라지는 교육과정(2022 개정 교육과정)을 도입하며 미래교육, 인공지능교육, 나눔과 배려, 자기주도학습 등을 아무리 강조하고 설파해도 대입 수능이라는 제도가 남아있으면 교육의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목표, 내용, 방법은 평가에 영향을 주는 것이 교육과정의 핵심이며 그리고 그 평가(객관식 위주의 대입수능)는 다시 목표와, 내용, 방법에 영향을 주는 것도 교육학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즉, 수능이라는 평가가 교육의 목표, 내용, 방법을 잡아 삼킨 지 30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교육에서 수능을 버리고 IB교육을 도입한 이 표선고에서 조금이나마 희미한 해결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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