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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호 Jun 12. 2024

IB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3)

3) 학부모들의 시선


올해 3월에 학부모 총회가 있었다. 사회를 보며 무사히 행사를 마칠 무렵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행사가 끝났다는 가벼운 마음에 마이크를 잡고 웃으며 간담회를 하던 중 한 학부모님이 질문을 하셨다.

학교에서 대입을 위해 수능 준비를 시켜줄 마음은 없는가요?

처음에는 질문의 의도 파악이 쉽지 않아서 진땀이 났지만 나는 부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학년부장과 논의해 보겠다는 핑계로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반대편 끝에 앉아 계시던 다른 학부모님이 앞선 학부모님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셨다.


우리는 입학할 때부터 표선고등학교는 수능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왔습니다. IB라는 철학이 마음에 들어서 온 것이지 대학입학을 목표로 온 것이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모든 학부모가 명심하고 공유해야만 학교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 대목야말로 지금의 학부모들이 우리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위의 대화를 지켜보며 학교가 많이 변했고 학부모님들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여길 오길 잘했다'라는 만족의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표선고는 역사가 이제 거의 70년이 되어간다(내년이 70주년이다.) 학교명은 여러 차례 바뀐 걸로 알고 있지만 도내 지역사회에서는 여전히 ‘표선상고’의 이미지와 농어촌 학교의 이미지로 대부분 남아있다. 그래서  도내 사회에서는 표선고의 달라진 위상에 대해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맞다. 여전히 표선상고 시절의 모습도 있다. 예전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며 살아왔고 달라진 학교의 모습에 상관없이 기존의 전통적인 교육관을 가진 분들도 계속 남아 있다. 이 동네에서조차 자녀들을 길건너에 있는 표선고등학교로 보내지 않고 제주시 혹은 서귀포시의 학교들로 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학입시는 18년도, 22년도에 한 명씩 서울대를 배출하기는 했으나 나머지 입시 성적은 대동소이하다. 내신 성적으로 대학을 가는 것이니 소위 내신 좋은 애들은 어느 학교에나 모두 있기 마련이기에 대학도 그럭저럭 가는 편이었다.(23년도 입시에서는 서울대 수의예과 입학생을 배출했다.) 그러나 2021년도 IB월드스쿨 인증 후에 입학하게 된 신입생(2024년 졸업생)부터 진학의지가 다르다고 들었다. 1학년 때는 30%대의 진학의지가 있었는데 졸업 시 약 60%대의 4년제 대학 입시 결과를 보였다. 그리고 대입 결과도 그전보다 훨씬(?) 좋아졌다.(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3월 초부터 갑자기 전학 및 입학문의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외국에서도, 강원도에서도, 심지어 서울 대치동, 인천, 부산할 것 없이 전화벨 소리가 울려서 전화받기가 무서울 정도다. 물론 대입 결과만 보고 전화를 하지는 않은 것 같다. 결정적으로 EBS 프로그램 및 각종 인터넷 방송 매체 등에서 소개로 인한 효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학부모들의 문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대입목적이다.

IB전형이 기존 고등학교보다는 훨씬 나은 대입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기대에 문의를 많이 하신다.

둘째, 대한민국 경쟁 사회에서의 탈출 목적이다.

특히 대치동에서도 3~4번 전화를 받았는데 모두가 사교육 일번지인 대치동이 신물 난다는 내용이었다.(같은 분이 여러 번 전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지금의 IB학교는 위의 조건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의 크기는 모두 제각각이기에 만족도 역시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구는 첫 번째 목적에 부합하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구는 막상 실상을 알고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 도피, 현실 탈출을 통해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IB학교는 '대안'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한다면 우선 IB학교에서의 대입 전략은 학생부종합전형뿐이다. 현재 대입전형의 흐름으로 보아 학생부종합전형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5%(인서울 기준 30% 내외)이다. 입학하자마자 쓸 수 있는 카드 중 70% 가까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논술 등으로 갈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작년에는 2명이 합격했는데 100명 중 2명의 합격률은  제주시내 일반고의 논술전형 비율과 비교했을 때 높은 편이다.) 우리 학교 기준으로 내신 산출 방식을 설명하자면 (내년부터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며 내신 등급 산출이 상대평가 5등급 제로 바뀐다.) 1학년만 1~9등급 상대평가를 실시하며 2, 3학년은 IB 과목들이 진로과목으로 설정되어 있어 성취도 기반의 절대평가(A, B, C등급)를 한다. 즉, 학생부종합전형에서도 내신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데 우리 학교의 내신구조는 1학년 등급만 가지고 환산하여 대입을 치러야 하는 구조이기에 유불리가 각각 존재할 수밖에 없다. 즉, 1학년 내신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2-3학년에서의 학습 성취 수준도 알고 싶어 하기에 A, B, C만 산출되는 2-3학년에서의 노력이 폄하되는 것도 사실이다.(성취도 비율 등은 학교알리미를 참고하길 바란다.) 그러므로 대입에서는 일반고 대비 불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상당수의 학부모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두 번째 목적인 경쟁사회에서의 탈출을 통해 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학교 생활을 목적으로 우리 학교에 자녀를 보내시길 원한다. 우선 2-3학년은 절대평가이기에 남들과의 경쟁보다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학교 생활이 달라진다는 점이 다르다. 솔직히 이 부분은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동안 교육부도 절대평가 방향으로 교육체제의 변화를 추구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년 10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내신 및 수능 체제  변화에 대한 교육부의 최종 발표를 들어보니이 부분은 물거품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최소 5등급 상대평가를 통해 조금이나마 대입에서의 변별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대학 측과 일부 학부모 단체들의 요구사항들을 받아 준 것으로 보인다.(우리나라는 여전히 대입이 교육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이기에 변별력은 중요한 핵심 쟁점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고등학교 상대평가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지금까지는 우리 학교 학부모님들은 절대평가 체제 속에서 학생들이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에 크게 만족해하시는 것 같다. 학부모회 임원들과 만나서 담소를 나눠보면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만족도는 대입 결과에서 오는 만족도(결과 중심의 만족도)가 아니라 학교 철학, 학교 프로그램, 선생님의 수업, 선생님의 헌신, 학생들의 참여도에서 오는 만족도(과정 중심의 만족도)였다. 다시 말해, 학교에 대한 신뢰가 무척 높았다. 그 중심에는 본교 교장선생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제일 컸다. 짧은 3개월의 시간 동안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절대평가라는 시스템이 학교 전반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무시 못할 수준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이 부분도 내년부터는 달라지기에 만약 대입을 위한 목적, 그리고 절대평가 속에서 즐겁고 주체적인 학교 생활을 기대한다면 IB학교는 전보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크다고 판단된다. 혹여 입학 및 전편입학을 염두한다면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지원해야 한다.

일반학교와 비교해서 학부모님들의 대입에 대한 보다 자유로운 시각과 학교 철학, 학교 프로그램, 교사들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지금의 표선고등학교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는 본교 교장 선생님의 흔들리지 않는 철학 속에서 교장 선생님을 믿고 따르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나눔과 배려의 공동체 정신이 일궈낸 결과다!

이것이 학부모님들의 시선에 대해 지금까지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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