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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호 Jul 21. 2023

교사도 아프다…!

점점 거세지는 교권의 추락을 바라보며…

23년 7월 18일에 있었던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교사들의 피해사례가 보도만 안 됐을 뿐 교사사회에서는 꾸준히 보고되고 있고 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솔직히 이런 사건들이 기사화되어서 글을 작성하는 것은 맞지만 그전부터 느끼고 있던 바들이 많았고 더 이상은 묵과할 수 없어서 이렇게나마 글을 통해서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고자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 조차도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에 쉽게 휩쓸릴 수 있기에……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왜 이런 일들이 갑자기 늘고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각계의 교육관계자 및 교육전문가, 그리고 일반 국민들마저 저마다의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 모두들 감정적인 대응으로만 보인다는 것이 문제이다.

2007년도쯤에 혹은 그 이듬해 교육정보공개법안 발의 후 그를 바탕으로 한 민원들이 증가하면서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관심 이상의 정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다. 혹은 진보교육감들의 등장 이후의 학생인권조례 발의로 인해 교권이 추락했다는 설도 있고 촉법소년 등의 청소년에 부여되는 판결의 약화 사례, 심지어 특정 TV 프로그램의 아동전문가가 등장하는 방송의 영향으로 아동폭력 및 아동학대의 지나친 적용 문제가 이러한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들려온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법은 위에서 주장한 것들을 - 감정적으로, 그것도 손쉽게- 폐지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쉬운 해결법을 그럼 왜 아직까지 못 하는 걸까?


누누이 강조하지만 교육문제는 국가대표 축구대표팀의 경기와 같다. 즉, 전 국민이 감독이자 코치이고 선수인 것이다. 그만큼 관심이 지대하며 그렇기에 저마다의 울분과 분노로 위와 같은 극단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이해당사자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국민들과의 지속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가 필요한 활동이다.

하지만 급하고 빠른 것을 좋아하는 우리 국민성은 당장의 해결책을 내놓고 그것이 빨리 사태를 수습하는데 최적의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길 원하는 것 같다.


물론 제일 좋은 방법은 교권을 원래대로 되돌려 -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 몽둥이를 들고 아이들을 패는 것일 것이다. 70-80년대처럼…… 물론 나 역시 몽둥이질을 해왔던 교사로서 그 효과를 익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잘 알고 있다. 만약 우리 교사들이 몽둥이를 들기 시작하는 순간 언젠가는 미국처럼 총을 들고 다녀야 할지도 모를 만큼 교육 현장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구제불능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로의 회귀는 있을 수 없다.


결국 일부 학생들과 학부모가 아동학대, 민원제기 등의 무기를 쥐어진 상황에서 교사에게도 그러한 무기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단, 그것이 몽둥이 같은 체벌이어서는 안 된다.) 민원제기 시 무고죄 등을 처리할 수 있는 교육청 차원의 대응기구와 경찰과의 연계 방안, 혹은 미국, 호주 등처럼 학부모를 소환할 수 있는 교사의 권리 마련, 문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권의 법적 명문화 등의 작업이 있어야 하겠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행정적 측면일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교육부나 교육청, 학부모, 학생들이 모두 교사를 믿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위에 언급된 초등학교에서 인터뷰한 교육부 차관의 모습, 킬러 문항 등으로 제기된 교육부의 일처리 모습이나, 심지어 코로나 시기의 교육부 대응방안 등을 보면 교사는 언제나 정책에서 소외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의 차세대 나이스 전환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이러한 부분에서 발생되었다고 본다.) 교사에게는 평가권도 없다. 그래서 성적에 대해서 학부모들이 손쉽게 이의제기를 한다. 반면 교수에게 성적을 제기하는 학생, 학부모가 일부 있기는 하지만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왜? 그들 교수들에게는 평가권이 있으며 전문가로서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실은 교수들의 시험출제 방식이나 채점 방식을 보면 오히려 한숨만 나온다는 것을 다 알 것이다. 그럼에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한다.) 코로나 시기의 학사일정, 차세대 나이스 프로그램의 적용 방안, 킬러문항의 문제점 원인들 모두 교사들에게 먼저 물어보고 협의를 했다면 보다 수월하게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었을 문제들이었다. 그러나 교사는 교육주체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 운영 및 학생지도에서도 학부모들은 교사를 믿지 못하기에 이와 같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신뢰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일부 교사들의 저급한 행동으로 인해 (내신 문제, 평가 출제 및 채점 문제, 전근대적인 학생지도 문제 등) 교사에게 부여된 신뢰성에 금이 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 문제만큼은 교사들이 축구 대표팀 감독이다. 선수선발부터 운용방식, 결과 해석 방식 모두 축구 대표팀 감독이 하는 것처럼 교사는 학교에서의 수업, 학생지도, 평가 등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발휘하고 있다. 막상 뽑아놓고 흔들어대면 어느 감독도 축구팀을 운영할 수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찬란한 주역이었던 명장 히딩크 감독마저 초반에는 거센 항의와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지지와 선수들의 믿음, 그리고 다수 국민들의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결국 월드컵 4강이라는 전무후무한 결과를 성취했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주 스웨덴과 핀란드 국외연수 중 학교들을 방문하여 현지 선생님들과 학부모, 학생들을 만났었다. 그들의 수많은 교육적 장점 중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다는 것과  교육전문가로서 선생님들을 신뢰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교육부 및 교육청 역시 커다란 교육목표만 제시할 뿐 나머지 세부적인 운영계획 및 실행 방안은 학교와 교사들에게 맡긴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행정업무도, 감사도 없다.)
왜 학부모, 교육부는 교사들을 믿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교사가 누구보다도 해당 교육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교육의 협의체들(교사, 학부모, 교육당국, 학생)과 만나서 서로의 오해를 풀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말이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법률적으로 서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지만 결국 서로를 믿고 기다려주는 교육 문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타당성)를 파악하자. 학부모들은 내 자식들이 어떤 인물로 성장하길 원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자. 교사들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통해 무엇을 더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교육부 및 교육청은 이러한 교사와 학부모들이 어떻게 상생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지켜보고 고민하고 지원책을 마련하자.


그러나 이 협의와 대화의 과정에서는 절대 대입 등의 진학문제는 배제하고, 다른 교육 주체를 배척하는 지원책은 얘기도 꺼내지 말자.
그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더 큰 싸움 밖에 안 나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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