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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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 윌 비 블러드>_2007__★: 5/5
한줄평: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요엘 2:30)'
내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헌법보다 십계명을, 통장 잔액보다 성령이 더 채워지길 바라시는 분이다. 나에게 있어서 진화론은 어머니에게 있어 기독교 같은 존재다. 지구 내 하고많은 종 가운데, 하필 인간이란 종이 한 행성을 좌지우지할 힘을 가진 사실은, 그 종의 일원으로서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적자생존 법칙의 그림자에는 늘 패배자가 흘린 눈물과 피가 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그 피를 진화론의 미학으로 볼 것인지, 또는 폐허로 볼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원시 시대, 부족 사회, 종교 국가를 지나 인류의 최종 진화 형태는 자본주의가 되었다. 물론 일부 국가는 아직도 종교 국가의 형태, 혹은 공산 국가의 형태를 표방하지만, 그 나라들조차 자본 없이는 현상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단정한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 미국의 19세기 초반이 영화의 배경이다. 영화는 금을 채굴하는 다니엘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은 마치 ‘빛이 있으라.’ 말하는 성경, 내지는 다른 신화와도 같다. 금을 찾는 곡괭이질 끝에선 스파크가 일어나는데 다니엘이라는 자본주의의 신이 어두컴컴한 굴에 빛을 만들며 새로운 신화가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니엘은 금에서 또 다른 자본주의 상징인 석유업자로 변모한다. 석유를 캐기 시작하며 더 큰 성공을 거머쥔 다니엘은 ‘폴’의 제안을 믿고 또 다른 자본주의 상징인 열차를 타고 리틀 보스턴에 도착한다.
다니엘은 땅을 구매하기 위해 지역의 정신적 지주인 교주(일라이)에게 접근한다.
다니엘은 일라이에게 돈을, 일라이는 다니엘에게 지역 영향력을 약속받는다.
하지만 일라이의 ‘제 3 계시교’가 그저 사이비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다니엘은 약속한 돈을 주지 않는다. 둘의 관계는 틀어졌고, 서로에게 도움은커녕 철천지원수가 된다.
다니엘이 저버린 것은 일라이와의 약속뿐만 아니다. 그는 자신의 양아들마저 저버린다. 애초에 책임감과 사랑으로 키운 게 아닌 사업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위해 데리고 있던 아들이다.
리틀 보스턴에서 석유가 터지던 날. 다니엘은 분출하는 가스에 튕겨 나간 양아들을 식당 테이블에 눕혀두고 한 치 망설임 없이 시추 시설로 달려가 작업에 열중한다. 그와 양아들은 온몸이 석유로 흥건했는데, 석유라는 사실을 잊고 보면 피 칠갑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다니엘의 모습은 전쟁을 승리한 장군의 모습 같고. 아들의 모습은 전쟁에 희생된 피해자 같다.
석유와의 전투가 끝나자, 다니엘은 청력을 잃은 아들을 특수학교로 멀리 떠나보낸다.
명목은 수화를 배우게 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쓸모 가치가 없는 사업 파트너를 귀양 보내는 것이다. 더 이상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부상병을 낙오시키듯 말이다. 떠나가는 기차에서 아버지를 부르짖는 아들의 목소리는 끝내 아버지의 시선을 돌리지 못한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성공'이란 광명만을 쫓기 때문이다.
영화 속 다니엘과 라이벌 구도로 그려졌던 일라이는 투자 실패로 돈이 필요해져 다니엘을 찾아온다.
일라이는 다니엘이 자신의 도움을 필요할 거로 생각했지만, 다니엘에게 있어 일라이는 아무 가치가 없다. 다니엘은 일라이를 향해 ‘내가 제 3계시교다, 내가 제 3계시교야’ 조롱하며 자본주의라는 새 신이 기존의 모든 가치를 파괴하고 유일무이한 보좌에 앉음을 고한다. 결국 다니엘은 그를 살해하고야 만다. 죽은 일라이의 머리에선 석유처럼 끈적한 피가 흐른다.
그렇게 다니엘은 가족(공동체)과 종교의 터를 엎어버리고 자본주의라는 새 시대를 연다. 금과 석유로 시작한 위대한 영화의 끝은 피로 땅을 적시며 마무리된다. 인류 최종 진화 버전이라 말했던 자본주의가 인류 초기의 야만 시대의 상징으로 막을 내리는 모습은 정말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