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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숙한 영미샘 Mar 02. 2023

엄마 여정기 -1편

해외에서 엄마 되기

나는 친구도 가족도 없는 낯선 땅에서 엄마가 되었다.


대학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앞길을 잘 찾아 나갔고, 회사 생활 동안에도 눈치 있게 일을 해서 선배들의 인정도 받았다. 사회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아이 하나쯤이야 못 키우겠냐는 마음이었다.


대담한 생각을 가지고 싱가포르 생활을 시작했다.


점점 불러오는 배를 보며 남편 동료들은 하나같이 언제 헬퍼를 구할 거냐고 물어왔다. 헬퍼를 고용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속으로는 그 사람들을 비웃기도 했다. 성인 두 명이서 아이 하나 못 보겠냐는 자신감 넘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이 곧 나의 어리석은 자만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아이를 키우는 일을 너무 몰랐다. 


임신 마지막 2-3개월부터 시작해서 거의 1년간은 잠을 제대로 자본적이 없었다. 만성 피로에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끼니를 챙겨 먹는다는 것은 호화로운 삶이었다. 손쉬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았다. 그마저도 식어빠진 라면을 먹거나 젓가락질 한두 번에 울어 대는 아이를 케어하느라 버려진 라면도 꽤 많았다. 


유독 잠자는 것이 예민했던 아이는 잠자기 전후로 집이 떠나가라 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항상 내 귓가에 맴돌았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곳에서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을 감내해 내는 일은 나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만심 넘쳤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말라비틀어진 꽃잎처럼 내 영혼도 말라가고 있었다.


선물 같은 첫아이 임신 소식을 알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이직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태국에서 열리는 Job fair에 참석했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따뜻한 태국의 날씨처럼 한 겨울의 내 마음도 녹이는 소식이었다. 


“싱가포르에 일자리 제안이 들어왔는데 우리 싱가포르 가는 거 괜찮아? 너만 괜찮으면 나 여기서 바로 Yes라고 이야기할 거야. 회사에서는 나를 원해.” 


이미 남편과는 해외 경력을 쌓고 다시 한국에 들어오자고 상의를 했던 터라 흔쾌히 좋다고 외쳤다. 원래 계획은 2-3년 경험 쌓고 돌아오는 것이었지만, ‘우리 10년은 족히 있겠는 걸?’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MBS와 멀라이언과 멀리 떨어진 서쪽에 삽니다.

싱가포르행이 정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에 변기 위로 새빨간 피가 가득 물들었다. 심장이 철렁하며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유산인가?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 산부인과 의사 아빠를 둔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하여 조언을 받았다. 다행히도 유산은 아니었다. 


첫 임신은 시작부터 내 심장을 쥐어짜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들었다. 


남편이 먼저 싱가포르로 출국을 하고 나는 서울에 혼자 남아 마지막 정리를 했다. 그 한 달 동안은 임산부들이 종종 겪는 환도가 서기도 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새벽 한밤중에 30분에 걸쳐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겨우 샤워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어 놓고 흐르는 물줄기 사이로 엉엉 울기도 했다.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다행히 그 고통은 영원하지 않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젖 먹던 힘까지 내서 기차를 타고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모님의 관심과 케어를 받다 보니 몸도 점차 좋아졌다. 


싱가포르로 떠나기 전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싱가포르 적응도 다 끝나지 않았던 약 5개월 남짓 후, 다시 출산을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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