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 영서씨가 상담 중 글을 쓰고 싶다 말했다.

영서의 초단편02

by 영서

무언가를 뱉어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합니다. 문제는 뭐부터 할지 모르겠다는 이 막막함, 입을 암만 크게 벌려도 도무지 나오질 않아 지겹게 머금고만 있는 저에 대한 불신입니다. 사실 힘만 풀면 스르륵 몸 안으로 다시 놓아질걸 알고 있지만, 뱉어내고 싶은 욕망에 축축 져버려 결국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을 애써 외면하는데 급급해졌어요.사실은요 다들 제가 놓기를 원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어요. 절 사랑한다고 말한 애인조차요.


늘 그럴듯하게 살아가는 애인이 부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끝내 서로를 끝내 이해 못 할 거라는 막연함, 급기야 그와 결혼준비를 하는 나에게는 이게 어쩌면 나의 차선책이라는 안도감, 이거라도 어떻게 지켜보자는 마음이 드는 저에 대한 경멸이 들어요. 왜요. 과해보이나요. 경멸이라는 단어가. 아뇨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서요


오늘은 외출준비를 한다고 화장실에서 찬물을 끼얹다가 얼굴을 들어 샅샅이 봤어요. 뭐가 보이냐고요. 막막함, 후회, 붉은 홍조, 여드름, 거뭇한 흉터등이요. 황급히 눈을 오므려요. 수건으로 대충 닦고 나와 핸드폰 액정을 켭니다


원피스가 주르륵 나열되어 있네요. 제가 화면을 끄기 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남자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려면 어떠한, 반듯한 원피스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나 봐요. 액정으로 고개가 들어갈 것만 같이 수그려요. 숙이고 또 숙이면 엉겨 붙은 생각이 잠시동안은 밀려나더라고요. 아마 앞에 누가 서있다면 저의 고꾸라진 뒷목만 보였을 거예요


언젠가 머리를 말리려고 훅 숙이던 순간에 같이 사는 남자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어요. 뒷덜미가 정말 하얗다고요. 웃기죠 가려서 보이지도 않는 뒷목에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아주 조그만 자신감을 가진 것에. 그러다 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어 졌어요. 아주 얇고 사그라질 것만 같은, 종잇장 같은 마음이지만 나도 한번 무언갈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