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노랗게 물든 장수향교의 가을

가장 오래된 향교 장수향교

by Yeongsik Im

전주에서 포항으로 가는 출장길에 장수향교를 경유했다.

장수향교를 다시 들린 것은 최근에 추진되고 있는 향교 유네스코 등재 추진협의회에 전라북도에서 포함된 향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문화재 보유 향교를 중심으로한 ‘유네스코 등재 추진협의회’가 구성되었고 전라북도에는 전주향교,김제향교,장수향교가 포함되어 있다.

_장수향교_1.jpg 장수향교 홍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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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향교를 들어서면 외삼문인 부강문 앞에 먼저 둘러 보아야 할 비각이 하나 있다.

바로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인 정충복비다.

임진왜란 당시 필사적으로 향교를 지켰던 노비 정경손을 기리고 있는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으로, 조선 헌종 12년(1846)에 세웠다

정경손은 의절의 고장인 장수에서 주논개 · 백의리와 함께 성을 초월하고 신분을 초월한 장수삼절(長水三絶)로 장수 정신을 빛낸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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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손의 호는 충복으로, 임진왜란 당시 향교내의 문묘(文廟)를 지키고 있었는데, 왜적의 한 부대가 이곳 장수지역에 침입하여 문묘에까지 이르자, 문을 굳게 닫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말하기를, “만약 문에 들려거든 나의 목을 베고 들라”하였다. 이러한 그의 늠름하고 당당한 태도에 감복한 왜적들은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 :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니 침범하지 말라)’이라 쓴 쪽지인 신표(信標)를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이로인해 피해를 막아낼 수 있었으며, 대부분 불에 타버린 다른 지역의 향교들에 비해 이곳만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훗날 사람들은 그의 의로운 기개를 거룩히 여겨 이 자리에 비를 세워 두었다,

장수향교_가을_4450.jpg 부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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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문을 들어서면 명륜당이 자리잡고 있다. 장수향교는 거의 경사가 없는 평지에 세워졌으나 강학공간을 앞에 두고 제향공간을 뒤에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방식으로 건립되어 있다.


평지에 세워진 향교는 성균관을 비롯하여 전주향교, 나주향교, 경주향교, 정읍향교에서 볼 수 있듯이 대성전을 앞에 두고 뒤에 명륜당이 위치하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가 일반적이지만 평지에 건립된 향교로 전학후묘로 건립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지만 1407년(태종 7)에 장수읍 선창리 당곡마을에 창건된 후 1685년 현 위치로 이전하며 창건 당시의 배치 형식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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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들이 기숙을 하던 동재와 서재는 명륜당 뒤쪽에 전당후재(前堂後齋)로 세워져 있는데 동재에는 경성재(敬誠齋), 서재에는 진덕재(進德齋)라고 현판이 걸려 있다.

장수향교_가을_4466.jpg 진덕재
장수향교_가을_4467.jpg 경성재
장수향교_가을_4477.jpg 장수향교 대성전, 1963년 보물 제27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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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향교 대성전에는 공자와 4성(四聖)인 안자,증자,자사,맹자를 비롯하여 공문 10철(孔門十哲)과 송조 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장수향교_가을_4482.jpg 대성전은 정면 3캄,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장수향교_가을_4486.jpg 내삼문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사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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