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래

30대, 이제서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by 요가여니


최근에 인터넷을 하다가 그런 글을 보았다. 의외로 30대에 들어서 새로운 분야로 진로를 바꾸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학교와 사회에서 이끌어주는 대로 정신없이 걸어가다가 ─ 사실 그 "평범한"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도 참으로 벅찬 일이다 ─ 20대 후반 혹은 30대가 되어서야 자아가 형성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기 때문인걸까. 직장인 5년차, 30대 초, 남들이라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나이에 뒤늦게 적성을 찾고 싶지만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일까 걱정하던 나에게는 참 위안이 되는 글이었다.


일반적으로 진로에 대해 한창 고민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나는 내 적성과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일반적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 거의 한 가지 모습으로 정해져 있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결국에는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 다른 길도 많았겠지만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거나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탐색해 볼 기회는 없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너는 뭘 하고 싶니?"라고 묻기 보다는 내신 성적을 잘 받아야 하고,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는 메세지를 끊임없이 나에게 주었다. 그 길 밖에는 없는 것으로 나는 알았고, 부모님께서도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미련하게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공부가 제일 쉬워."

사업할 만큼 뻔뻔한 성격도 아니고, 사교성이 뛰어나서 사람을 잘 구슬리는 것도 아니고, 이렇다 할만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묵묵히 엉덩이 붙이고 공부해서 성적 잘 받아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게 제일 좋다고. 교사이셨던 어머니는 나에게 교사가 최고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나중에 일을 해보면 방학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건지 알게 된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나 좋아하는 일은 없지 않냐고 말씀하셨다. 나도 생각해보니 "이거 아니면 안돼!" 할 정도로 좋아하는 일도 없었다.



직업이란 그저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혼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버는 수단,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 사 먹을 수 있고 사고 싶은 것이 있을 때 큰 어려움없이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로 자아실현을 한다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회사에 들어갈까 고민할 때 내가 무슨 업무를 하는지보다는, 회사 복지가 어떤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지원했다. 출퇴근 시간이 잘 지켜지는지, 초과근무 수당은 칼같이 지급되는지, 연차 사용은 자유로운지 등등을 따져서 회사를 골랐다. 내 전공은 상관없었다. 내 적성도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 그렇게 했으니까.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했든 결국에는 졸업반이 되면 우후죽순으로 올라오는 기업 공채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서류를 넣는 것이었으니까. 사기업에 지원하든, 공기업에 지원하든, 대학원에 가든, 우리는 그 한정된 길만이 인생을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회사에 들어가기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회사를 찾아 일하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제일 잘 하는 것은 공부해서 성적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찰떡같이 믿었던 나는, 필기시험을 통과해서 들어갈 수 있는 회사를 선택했다.

사회생활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회사라는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업무를 배우기도 하고, 수직적인 구조에서 어떤 태도로 일해야 하는지를 익히기도 하고, 상사는 어떻게 대해야 하고 선배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비효율적인 업무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생각한대로 업무를 처리했다가 혼나기도 하고, 필터링 없이 질문을 했다가 질책을 당하기도 하고, 자괴감과 억울함에 울기도 했으며, 또 그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지기도 했다. 동시에 학교 친구들하고는 다른, 새로운 또래 친구들을 만나 친해지고 회사 밖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근무시간에는 위에서 시키는대로 보고서를 썼고, 칼같은 퇴근시간을 지키면서, 퇴근 후 내 시간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찾아 마음껏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내가 회사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참 길었다.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하루 9시간, 출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하루에 약 11시간을 회사를 위해 쏟아야 했다.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받아들이기엔 내가 월급을 대가로 주어야 할 내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다. 내가 업무에 대한 애정이 있었거나, 혹은 그 대가가 조금 컸다면 이야기가 달랐을까.

회사 업무가 손에 익고 익숙해지면서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건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커다란 회사의 구조때문에 이렇게 밖에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애초에 애정도 관심도 없었던 일이었던 데다가, 수직적인 구조에서 내 의지는 1도 들어갈 수 없었고 그저 꼭두각시처럼 키보드를 쳐서 보고서를 만들어 내야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점점 회사생활의 무의미함을 느끼게 되었다. 회사 친구들과 가지는 소소한 담소 시간, 퇴근하고 난 후 잠깐 즐기는 취미활동으로는 충족되지 않았다.

업무강도도 적절했고, 출퇴근 시간도 명확했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아무런 의미도, 보람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일이 잘 되어도 기쁘지도 않았고, 일이 잘 안되어도 나에겐 아무 타격도 없었다. 출근하면 나는 잠깐 나의 영혼을 꺼두고 커다란 기계의 하나의 부품이 되었고, 퇴근시간만을 기다리는 영혼 없는 좀비가 되어있었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의미 없는 작업에 쏟고 퇴근 후의 2~3시간만을 기다리는 생활을 거의 20년을 가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혀왔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것 같았다. 가끔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혼자 엉엉 울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생각한 내 삶은 이렇게 무채색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가 이런 죽은 것과 같은 생활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건 회사의 잘못은 아니라고 하고 싶다. 나와 달리 회사가 싫다고 말하면서도 만족하며 다니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업무와 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보람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문제는 내 성향을 너무나도 몰랐고, 나에 대해 너무나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성취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내가 주도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 그 과정을 통해서 결과물을 내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추상적인 서류 작업보다는 손에 잡히는 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비효율적인 구조, 근무시간을 채우기 위한 무의미한 업무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제라도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평생직업은 없다고 하니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렇게 끝내기는 너무 아쉽다고 생각했다. 이 사실을 30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는 것이 억울하고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70대가 되어서는 '내가 60대였으면 돌도 씹어먹을 수 있다'는 말을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태생적인 모범생으로 산 나였기에 사회가 흔히 '서른'에게 기대하는 경제력, 책임감 등을 포기하기가 두렵지만, 이렇게 계속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는 않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n년차 직장인에게 으레 찾아오는 권태기라고 말한다. 뭐니뭐니 해도 월급쟁이가 제일 좋다고 한다. 회사 밖의 세상은 전쟁터라고 말한다. 만약 회사를 안 다니면 무엇을 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 계획이 있냐고 다그친다.

나보다 더 경험있는 사람들이 해주는 얘기니 힘들어도 버텨야 되는 거겠지, 힘들게 들어온 회사이니까 쉽게 포기하기는 아깝겠지, 일시적인 현상이겠지 하면서 '존버' 정신으로 버텨보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남아있는 허전함과 답답함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정도면 괜찮아, 나름 나쁘지 않은 인생이야'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10년, 20년 성실히 회사를 다니고, 퇴직할 즈음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잘 살았다, 뿌듯하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마음 속의 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책은 없다. 언제나 대체가능한 사무직으로 근무한 물경력만 남아있을 뿐, 아무런 기술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이렇게 껍데기만으로 사는 것이 점점 힘이 든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곪아가고 있다. 내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니 어딜가든 심술궂은 말만 튀어나오고 모든 상황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입만 열면 부정적인 말만 던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여유를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렇게 살다간 심술궂은 할머니가 되어 어딜가든 시비만 거는 사람이 될 것 같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제라도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가 성취감을 가지고 보람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시간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인생을 올찬히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할지도 모르고, 내 적성을 결국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루를 마쳤을 때 '아, 오늘 열심히 일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보냈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내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