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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굿 Dec 12. 2022

드럽게 운수 좋은 날 (2)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리던 크리스마스이브날 밤.


시골 단칸방 구석에서 한 산모가 새로운 생명을 만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병원 갈 형편이 되지 않아 근처에 사는 언니가 조산사가 되어 주고 있었다.

  아기는 어쩐 일인지 잘 내려오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힘을 주지 못할 만큼 탈진하였으나, 이미 어미였던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수십 번의 힘주기 끝에 드디어 물컹하고 밑이 시원해지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런데 기쁨을 나누기도 전, 우렁차게 들려야 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기는 힘없이 컥컥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곁을 지키던 남자는 위험을 직감하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전화기가 있는 옆집으로 달려가 유리문을 세차게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순간 눈에 들어온 장도리를 들고 문을 힘껏 내려쳤고, 산산조각이 난 문을 밟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전화 다이얼을 돌려 수화기 너머 교환원에게 의사를 연결해 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전화를 받은 의사는 남자의 설명을 들은 후 대답했다.


"아무래도 태변을 먹은 것 같소. 내가 지금 출발해도 늦으니 아이 입을 벌리고 거꾸로 들어 등을 쳐 보시오. 그래도 반응이 없다면 안타깝지만 아이는 살기 힘들.."


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를 내던진 남자는 곧장 집으로 달려들어왔다.


아이는 그 사이 보랏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고민할 시간이 없다. 그는 옆에 놓여있던 뜨거운 물에 그대로 손을 담갔다 뺀 후 아이 입을 벌렸고, 꽉 차 있던 무언가를 손으로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아직 탯줄이 연결된 아이의 두 발을 모아 잡고 거꾸로 들어 올려 등을 치기 시작했다.


한번. 두 번. 세 번. 


'켁'하고 아이의 입에서 뭔가가 흘러나오더니 퍼렇던 발끝에서 피가 돌기 시작했다. 금세 온몸이 핑크빛으로 돌아온 아기는 그제야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듯 집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아기를 내려놓고 나니 온 몸에 힘이 풀린다. 

남자는 기절 직전의 아내를 내려보며 말했다.


"살았어. 여보. 우리 아들. 우리 아들이 살았어"


마을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아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나의 오빠는 그렇게 기적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의 생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포항에 도착했다. 

길게 늘어선 택시 줄의 맨 앞으로 가 양해를 구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그때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

"아빠?"

"성연아.. 어디야... 빨리 와.. 너네 오빠 정말 가려나 봐."


지금 포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가고 있다고 말하는 내게 그는 더 크게 울부짖음으로 답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나는 더 차분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정신차리라던 남편의 목소리만 붙잡으며 그렇게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긴급했던 응급상황이 지나간 흔적 위. 

그는 고요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오빠, 나야 막둥이. 나 기다려 준거야?

오빠 얘기 들었지? 오빠 이제 저 위로 간대.

겁나지? 마음 편하게 가져. 무서울 거 하나도 없어. 괜찮아.


사느라 참 쉽지 않았다. 그렇지? 

시대보다 너무 빨리 태어난 예술가로 사는 거 힘들었지.

그동안 정말 수고했어. 애썼어.

힘들었던 거 모두 여기 두고 가. 다 잊고 좋은 기억만 가져가.


오빠를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보내주시더니 이제 너무 필요해서 데려가시나 봐. 

이제 거기서 좋아하던 그림 마음껏 그리며 살아.


엄마 아빠는 걱정하지 마. 언니랑 내가 있잖아.

그러니까 편하게 가. 다음에 봐. 잘 가."









마감이 있는 일을 하느라 며칠을 밤새우고, 겨우 일을 넘긴 후 잠시 낮잠을 자가다 갑자기 심장이 멎었다고 한다. 


아무도, 심지어 그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을 결말이다.

우리는 허망함 앞에 쓰러져 각자의 슬픔을 토해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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