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캐슬>: 해피가 아닌 그저 헤픈 엔딩 (3)

마지막으로 드라마를 마음으로부터 보내며

by 연이

*드라마 내용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2019년에 저장해둔 마지막 편 글입니다. 드라마 결말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은 뒤에 써서, 무척 화가 난(?) 시청자 모드에서 썼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실은 드라마에 대한 애정에서 쓴 글입니다.

(상단의 이미지 출처: JTBC 웹사이트)


1편: https://brunch.co.kr/@yeonie98/73

2편: https://brunch.co.kr/@yeonie98/74

드라마 <SKY 캐슬>이 종영한지도 (*이 글을 쓴 시점에서)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종편 및 비지상파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비롯한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우던 이 작품은, 그 누가 뭐래도 <SKY 캐슬>은 여러모로 드라마 계의 역사를 다시 쓴 작품이나 다름 없다. 드라마가 종영하고 나서도 무수히 많은 유행어들은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KBS 해피투게더를 비롯한 각종 예능 방송에서도 큰 인기를 끄는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기에 그 결말이 유독 더 아쉽게 느껴진다. 지난번 리뷰에 이어 왜 이 드라마의 결말이 한국 교육 현실에 걸맞지 않는 아쉬운 엔딩이었는지 보다 더 자세히 설명해 보고자 한다.


자아를 멀리서만 찾으려는 우주에게

사실 내가 드라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당황스러웠던 장면이 바로 우주가 고등학교 자퇴를 결정하는 부분이었다. 다른 장면들이야 해피 엔딩을 위해서 그렇다고 쳐도, 굳이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며 모범적인 학교 생활을 해 나가던 우주가 왜 자퇴를 해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것도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우주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고등학교 졸업장보다 더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위해 자퇴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는 성적이나 대학과 같은 것들이 혜나의 죽음 앞에서나 그렇게 느닷없이 벌어지는 사건들 앞에서 얼마나 무용해질 수 있는지를 느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제 아무리 성적과 대학 이름이 중요한다 한들, 죽음과 같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서는 이 또한 전부 무용지물이니까.


이어서 우주는 이렇게 말한다,

눈뜨면 저한테 그냥 생기는 오늘은 혜나가 살아보지도 못한 소중한 날이잖아요.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성적 올리자고 문제나 풀면서 낭비할 순 없어요.



나 역시도 우주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우주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고등학교 시절을 성적 올리자는 데에만 신경 쓰면서 살아가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건, 도대체 그게 어떻게 고등학교를 반드시 자퇴해야만 하는 이유인지의 문제다.


우선 우주가 혜나의 얘기를 꺼냈으니 이 말부터 하자. 혜나가 만약에 살아 있었더라면, 혜나는 고등학교를 자퇴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기 위해 애썼을 거다. 그러니까 우주가 정말 혜나가 살아보지도 못한 소중한 날을 대신 살아주고 싶다면, 사실 혜나 대신에 고등학교를 졸업해 주겠다고 말하는 게 더 이치에 맞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우주의 자퇴 이유도 사실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우주의 부모님께서 '휴학'이라는 선택지까지 제안을 하신 상황에서 굳이 고등학교를 그만두는 일을 고집 부리는 이유가 대체 뭘까?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귀한 시간'이 꼭 고등학교를 자퇴 해야지만 생겨나기라도 하는 걸까?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표현을 들어 말하자면, 인생에는 종종 '무엇'을 하는지보다 '어떻게' 하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고 한다. 당장 작중에서 황치영 같은 의사만 보더라도 자신이 속한 병원에서의 부조리로부터 도망치기 이전에 할 수 있는한 소명의식을 발휘하고 있다.


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자신의 앞날에 대한 진지한 고찰 없이 생활을 하는 게 나쁜 것이다. 서울대 의대를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진로에 진지한 고민 없이 '엄마가 가라니까' 가는 게 문제인 거다. 그러니까 우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하기 위해 꼭 고등학교를 벗어날 필요가 없다. 그 이전에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었는지부터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 '어떻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하지 않는다면, 그 어디에서도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당장 여기서도 찾을 수 없는 자아를 다른 어딘가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산이다. 백영옥 작가님의 말씀을 빌려 말하자면, 나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멀리 떠나기 이전에 오히려 자신이 위치하는 곳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진짜 나를 찾고 싶다’라는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고, 더 존중받고 싶다는 비밀스런 욕구가 숨어 있어요. 그것이 ‘자아를 찾는 여행’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고요. 하지만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어쩌면 떠나는 게 아니라 머물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주 역시도 한국을 멀리 떠나기 이전에 오히려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더 오래 머물렀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부터 고민했었어야 했다.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쓰는 방법은 다른 어느 다른 장소도 아닌, 사실 자신이 발 붙이고 서 있는 현재라는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도피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우주의 자퇴 결정을 문제시 삼는 건 그게 단순히 개인의 결정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고등학교 자퇴가 대한민국 교육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SKY 캐슬>은 학부모와 학생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는 대한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데 이 작품이 그런 경각심을 심어줘 놓은 끝에 제안하는 대안이라는 건, 작중 인물들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자면, 선생님에게 반기를 들고 교실을 뛰쳐나가는 것과 아예 고등학교에서 자퇴해 버리는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현실적인 대안도, 해답도 아니다. 특히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유럽 여행을 하는 우주의 모습은, 그런 선택지마저 고를 수 없는 형편의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도리어 조롱에 가깝다. 한국의 입시 제도를 벗어나는 길이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거라면, 그럴 돈마저도 없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드라마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조차 하지 않고 끝나 버린다. 이 드라마를 통해 일부 시청자들이 - 결국 돈이 많은 게 최고다 - 라는 다소 씁쓸한 현실을 교훈으로 얻어가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그만둔다는 건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사실상 '도피'에 가깝다. 이게 도피가 아니라면, 나는 한국의 교육 제도 현실을 바꾸어 볼 방법은 없으니, 그냥 도망치는 수 밖에는 없다는 식의 이 결말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길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학교 폭력 실태에 대해 열심히 논한 끝에 결과론적으로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된다는 결말을 보는 기분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드라마는 많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의 문제를 다룬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부조리한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그로부터 쉽사리 벗어날 수도 없다. 애초에 그렇게 학교를 자퇴시키고 여행을 보내 버리고 끝날 문제 같았으면, 왜 진작에 그러지 못했을까? 그럴 수 없는 게 대다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아예 교육제도에서 도망쳐 버리라고 말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어려운 질문에 대답하는 건 어려운 반면, 그로부터 벗어나기는 쉽다.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해 버리면 간편하니까. 다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에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어떻게'를 고민해 보기 이전에 질문에서 도망치려고만 한다는 게 한 명의 시청자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수임의 공허한 메아리

이수임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 드라마가, 사교육이 나쁘다며 교육 제도에 대한 탁상공론만 하는 이들의 시선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수년 간의 정책적 논의 (학원 10시 제한 등)에도 불구하고, 정작 문제의 뿌리는 오늘날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다. 많은 학부모들, 특히 의대에 자녀를 보내려는 부모는 예서 엄마처럼 해야 자녀를 좋은 곳에 보낼까 말까 하다고 믿는다. 학부모가 그만큼 노력해야, 아이들이 그만큼의 삶이라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드라마는 (적어도 그 결말만 보자면) 이런 현상에 대해 "왜 그럴까?"를 심도 깊게 묻고 이해하려고 들지조차 않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본인이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선과 악을 이해하는 이수임의 시선과 닮아있다.


하지만, 이수임의 말대로 세상이 그렇게 흑과 백, 선과 악으로 쉽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나오는 선역인 이수임을 비판하고, 오히려 예서 엄마에게 더 공감하기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예서 엄마나 학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을 결코 긍정하는 게 아니라, 그런 학부모를 단순히 자녀를 괴롭히는 '악'으로만 치부할 일도 아니라는 얘기를 하는 거다.)


복잡한 문제를 덮어놓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그저 그런 이태임식 결말처럼 느껴진다: 그저 모두 행복해 보이는 해피 엔딩, 불편한 이야기를 모두 매듭짓고 덮어버리는 방식. 하지만 이 해피 엔딩에는 많은 게 빠져 있다. 이 드라마의 회개는 누구를 위한 회개인지, 혜나는 왜 죽어야만 했는지... 이런 중요한 질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결말에서 다뤄지지 않고 넘어가 버린다. 왜? 그건 너무 불편하니까.


단순히 과도한 교육열이 '나쁘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 심지어 예서 엄마조차도), 적어도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이수임식 시선으로 이 모든 걸 '나쁘다'고 덮어 버리니까 모든 이야기가 꼬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SKY 캐슬>은 처음부터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게 된 작품이었다. 그런 교육제도의 문제를 스크린 위로 끌어오게 되어 호평을 받게 되었더라면, 적어도 그렇게 문제시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정도는 해 보는 게 옳지 않았을까? 특히나 이 드라마가 단순히 '허구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 만큼의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닌 작품이니만큼 말이다.


결말이 지나치리만큼 '해피해피'한 것은 어쩌면 오히려 그런 사회적 책임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현실적인 작중 묘사로 호평받던 이 드라마가 갑자기 결말에 와서 이런 터무니없는 결론을 내는 것이 의아했는데, 그게 오히려 '교훈'적인 내용을 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해는 한다. 사회적 메시지가 필요할 것이다. 나쁜 결말로 만들었을 때의 사회적 파장이나 책임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더 큰 악을 부르는 거짓된 해피엔딩

그런데, 현실은 변하지 않는데 드라마만 그렇게 끝나버리면 결국 현실을 그대로 답습하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드라마의 결말을 보고 더 허무함을 느끼고 더 큰 악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 드라마의 결말이 지닌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이유다.


실제로 <SKY 캐슬> 드라마 방영 이후, 드라마가 의도한 결말과는 전혀 다르게, 의대를 보내기 위한 고액 컨설팅에 오히려 관심이 쏠렸다. 또한, 드라마에 나오는 좁은 감옥 같은 구조의 예서 책상은 적지 않은 가격 (245만원)에도 큰 인기를 몰았다.


이수임 식 이상주의가 문제인 이유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좋을 대로만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볼 때, 그제서야 진정한 문제 해결에 가까워질 수 있을 테니까.


이 드라마는 현실을 직시했어야 한다. 차라리 매정하게 배드엔딩이라도 냈어야 했다. 1화에 나온 가족의 비극처럼, '지나친 교육열에 아이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정도의 이야기는 되어야 사람들이 들을까 말까 한다는 것이다.


<SKY 캐슬>은 여전히 내가 제일 재미있게 본 드라마 중 하나다. 하지만, 그래서 그만큼 결말이 너무나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SKY 캐슬>은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문제를 대면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이수임의 공허한 메아리처럼,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름답게 포장된 거짓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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