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어서 불안한 주디, 회피형 애착 유형의 닉
무려 9년 만에 돌아온 주토피아. 1편을 고등학생 때 보고, 이제 한참 성인이 되어 다시 보게 되었다. 2편에 대해서는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스포일러 주의
주토피아 2에서는 세계관이 확장되어 이전 편에서 다룬 편견과 차별의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다룬다.
편견으로 인해 차별받는 파충류의 이야기를 보면서 처음에는 이민자 집단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리뷰들을 보면서 파충류가 사실 원주민을 상징할 수도 있겠다는 해석에 무릎을 쳤다. 어느 쪽이든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라는 주제가 1편보다 더 확장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파충류 차별을 다루면서 그들의 가족, 특히 아이들을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우리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하다고 단정 짓는 이들도 우리와 똑같이 가족이 있고, 어리고 귀여운 자녀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효과적인 연출처럼 느껴졌다.
영화는 파충류만이 아니라 닉과 주디 역시 비슷한 위기를 겪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그들도 언론에 보도된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판단당하기도 한다. 특히 주디가 저지른 실수가 단순히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경찰을 꿈꾸는 모든 토끼'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대사는, 소수자가 겪는 집단적 낙인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주토피아 2의 진 테마는 '파트너 관계'가 아닐까? 새로 등장한 파충류와 사회적인 메시지가 영화의 중요 줄거리를 차지하긴 했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사실 주디와 닉의 '파트너 관계'가 주요 주제고, 파충류 이야기가 그 관계의 발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처럼 사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운슬링 장면에 나오는 다양한 파트너들의 모습부터 영화는 계속해서 '파트너'라는 단어를 부각시킨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도, 팀이 해체될 위기를 맞아 주디가 '어떻게 좋은 팀이 될까'를 고민하면서다. 2편에서 다시 만나게 된 '미스터 빅'도 가족 구성원이랑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좋은 파트너라는 이야기를 하는 등, 계속해서 '파트너'라는 단어가 영화 내내 등장한다. 그래서 나는 디즈니가 2편을 관통하는 새로운 주제로 '파트너 관계'를 밀고 가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시작부터 드러나는 두 인물의 성향 차이
영화는 시작부터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성격 차이를 보여준다.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이고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하는 주디, 그리고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닉.
주디는 닉과 좋은 팀이 되고 싶다는 것도 본인만의 방식으로 노력한다. 예를 들어,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해 책을 펴고 밑줄을 치면서 공부한다. 모범생 같은 접근법이 특히 주디답다고 생각했다. 주디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한데, 주디는 1편에서나 2편에서나 법조항을 읊으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를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책에 나온 대로 대응하고 공부하는 스타일이다. (로스쿨에 오면 잘할 것 같다.)
반면, 닉은 주디가 준 책을 아예 탁상 다리 밑에 넣어버린다(!). 닉은 그때그때 임기응변에 더 강하고, 세상이 법의 조항만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리고 주디와 같은 신념과 세상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진 않는다.
주디: 잘하고 싶어서 불안한 마음
이번 편에 주디가 답답하거나 짜증 난다고 하는 이들도 있는 걸 봤다. 나 역시도 주디가 닉에 대해 배려심 없이 행동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주디의 마음을 이해할것도 같았다. 나도 주디처럼 내 스스로를 증명하고, 맡은 바를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가 많아서다. 그런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주디가 밧줄을 잡고 산 꼭대기로 올라가려는 장면이었다. 닉의 속도에 맞추기보다 빨리 올라가야 한다고 재촉하는 주디의 모습이 영화 전체적으로 느껴졌던 주디의 불안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근데 한편으론 더 잘해내고 싶은 마음과 거기서 온 불안이 주디를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되게 해준 원동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주디의 불완전한 면이 꼭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주디에게는 닉도 중요하지만, 경찰로의 커리어와 입지도,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주토피아를 지켜내고 정의를 수호하고 싶다는 신념이 강하다.
주디는 그 신념에 대해 크게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을 정도로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심지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주디는 정의를 위해야 한다는 신념이 앞선다. 그래서인지, 닉이 그런 신념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말은 주디에게 유독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닉: 회피형 애착 유형의 전형
한편, 영화를 보면서 닉의 모습은 회피형 애착 유형의 전형 같다는 생각이 여러차례 들었다.
우선, 닉은 진지한 얘기에도 농담으로 반응한다. 그게 닉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는 사실 감정적으로 깊어질 것 같으면 농담을 방어기제로 사용해 도망치려는 습관처럼 여겨졌다. 특히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대해 계속해서 농담을 하는데, 이 또한 그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대신 웃어넘기고 싶어 하는 방어기제처럼 느껴진다
그가 농담처럼 말하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 자체도 회피형 애착 유형과 관련이 있다. 애착 유형은 어릴 때 주 양육자와의 관계 등을 통해 형성된다고 한다. 주토피아 1에서 잠깐 나온 닉의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서 받은 깊은 상처로 더 이상 세상에 기대를 품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이후 거리에서 자란 환경이 약한 면이나 감정적 요구를 드러내지 않게 한 것 같다. 그리고 주디가 걱정된다고 문자를 보내거나 영상통화를 하는 주디의 가족과 달리, 닉이 어려운 상황이 처했을 때 기댈 양육자가 영화 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닉은 힘들 때에도 다른 누구에게 감정적 요구를 하지 않는 게 익숙하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없는 것처럼 여기며 살아왔을 것 같다. 영화 초반에 힘든 일이 생겼을 때에도 대화를 나누기보다 TV를 보면서 회피하는 태도가 그런 대표적인 예로 느껴졌다.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냉소적 세계관도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불신처럼 느껴졌다. 닉은 처음부터 세상이나 타인에 대한 기대가 없었던 게 아니라, 줄곧 그 기대가 좌절되고 꺾이는 경험을 해왔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기대가 충족되지 못해 감정적 상처를 겪기보다, 애초에 기대 자체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신의 감정적 욕구를 회피하고 외면해 온 것 같다.
그래서 닉은 “혼자가 편하다”고 줄곧 말한다 (어느 정도는 실제로 그렇기도 했겠지만). 하지만 나중에 주디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혼자가 편하다”는 말의 이면에는 소속감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있는 게 편하다는 것만이 닉의 진심은 아니었던 거다.
또, 닉이 주디에게 전해야 할 마음을 앞에서는 표현하지 못하고, 나중에 혼잣말을 하며 후회하는 장면을 보며 닉의 회피 성향을 더욱 확신했다.
한편, 닉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능통하고 남에게는 겉으로 잘 맞춰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 또한 회피형 애착 유형의 특성일 수도 있다고 들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욕구를 돌보기보다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잘 맞춰주는 성격이 될 수도 있다고.
흔히들 연애에서 회피형 애착 유형을 '거르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과의 안 좋은 연애 경험에 대해 얘기하는 이들이 엄청 많다는 건 일단 회피형 애착 유형 사람들이 처음에는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처음부터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많은 피해자(?)가 양산될 리가 없다. 흔히 ‘회피형’을 생각할 때의 이미지와 달리 회피형 애착 유형 중에는 겉보기에 무척 매력적이고 사회생활도 잘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속마음을 쉽게 알 수 없는 회피형의 특성도 그 매력 중 하나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이보다 속을 알 듯 말 듯한 인물에게 더 호기심이 가기 마련이다. 닉의 인기도 그의 츤데레 성향과 눈을 반쯤 뜬 오묘한 표정, 그리고 그 능글맞은 성격에서 오지 않나 싶다.
하지만 사실 나는 닉이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거나 드러내지 않을 뿐) 주디가 닉을 애정하는 것보다도 주디를 더 애정한다고 생각한다.
분량 문제 이슈로… 닉주디 주식이 왜 무조건 되는지에 대하서는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