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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Sep 04. 2022

일본에서 처음으로 맛본 술

술이 그렇게 쓴 맛이라면 대체 뭐하러들 그렇게 먹는 건지

'라이트 업' 버스가 정차하는 곳들 중 하나에는 21세기 미술관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들여다보았다. 되게 따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었다. 먼저 시민들이 만든 작품들이 있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부터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시민들이라고는 하나 아마추어 솜씨라고 믿기 어려웠다. 이후로 표를 끊어서 본 전시를 봤다. 그곳에는 일종의 제품들 같은 것이 놓인 전시가 있어서 흔히 생각하는 예술 작품 느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되게 재미있는 수영 풀장이 있었는데 그 작품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처럼 흔히 생각하는 미술관의 딱딱한 특유의 분위기가 아닌 일상 속의 미술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이 좋다는 데에 나와 부모님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동생이 왔으면 아무래도 더 좋아했을 만한 곳이라는 데에도 다들 동의했다. 우리가 평상시 알고 지내던 미술관들보다는 뭔가 좀 더 실용적이고 근대적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더 북쪽으로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도오야마(富山) 현에 도착했다. 그곳은 완전히 일본 시골이었다. 도착한 것도 여관이었다. 온천에 갔지만 아쉽게도 생리 기간과 겹쳤기 때문에 온천을 다 이용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나는 죽어라 피곤했고 온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크게 미련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이 좋았다. 저녁에 먹은 '가이세키(会席)'라는 일본식 코스 요리를 대접하던 곳의 분위기도 좋았다. 식사를 매실주를 마시면서 시작했는데 그게 내가 기억하기로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마셔본 술이나 다름없었다. 부모님은 그 술이 맛있다고 하셨는데, 막상 먹어보니 내가 생각한 매실 맛이 나는 게 아니라 막 쓴 맛이 났다. 내가 그런 감상평을 전했더니, 부모님께서 그건 술이니까 당연한 거라고 했다. 나는 소주만 쓴 술인 줄 알았다. 술이 그렇게 쓴 맛이라면 대체 뭐하러들 그렇게 먹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술이 되게 맛있는 금기의 음료라도 되는 줄 알았기에 실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마시고 싶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이제 금기의 음료였던 술을 합법적으로 마시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 아닌가. 그리고 가이세키 요리는 그럭저럭 좋았다. 언뜻 보기에는 썩 먹을 게 없어 보였는데 막상 하나하나 다 먹다 보면 배불렀다.



마지막 날에는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교통수단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엄마는 계속 이것 타고 저것 타고 한다고 싫어하셨는데 나는 사실 좋았다. 나는 걷는 게 제일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게을러서도 있겠지만 그냥 일단 발이 너무 아팠다. 다리는 오히려 힘들지도 않은데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아무래도 내 발이 평발이고 해서 뭔가 발이 삐뚤어진 게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발이 아파서 힘들었다.


한편으로 여행길에서 <Catcher in the rye (호밀밭의 파수꾼)> 책을 다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기내에서는 잡지를 읽으며 시간을 때웠다. 스티븐 스틸버그를 비롯한 창작자들과 영화에 대한 얘기가 실려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기내에 '닥터 스트레인지' 영화가 깔려 있는 걸 나중에서야 알고 보게 되었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다 하기 전에 비행기에서 내리는 바람에 하필이면 결말만 빼고 다 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실망했다. 엄마가 영화를 보고 뭔가 되게 철학적인 느낌이 있다고 얘기하셨는데, 나는 그런 것도 잘 모르겠다 싶었다. 영화 감상평을 기록하기 위해 '왓챠' 앱을 열었는데, 내 취향에 대한 빅데이터를 수집한 어플이 내가 별점 3점 정도를 줄 것으로 이미 예상하고 있어서 무서웠다. 내 평가를 미리 예측할 능력이 있다니!


이번에는 공항에 매우 여유롭게 서두르는 일 없이 도착했다. 그리고 도착한 한국은 역시나 전혀 춥지 않았던 일본과는 달리 추웠다. 공항에 도착해서 집에 가기 위해 차를 찾았는데, 차가 고드름이 나 있고 꽁꽁 얼어있었다. 그래도 좋은 자동차라서 그런지 안은 그렇게까지 얼음 창고가 아니었다! 차를 탈 때는 크게 피곤하지 않았는데도 막상 집에 오니까 얼른 잠들게 되었다. 밤 10시인가 11시쯤 돼서 짐 정리만 하고 빨리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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