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친구들을 다시 볼 것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마주할 때의 느낌은 달랐다. 특히 그 자리에 있던 친구 한 명과 눈이 마주쳤을 때에는 눈에 못 보던 쌍꺼풀이 자리 잡혀 있어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꽤나 놀랐지만 이를 티 내기가 뭐해서 최대한 태연한 척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한 차례 싸운 이후로 절교한 친구는 그에 비해 너무 일관되게 똑같은 모습이었다. 학창 시절에 내가 기억하던 그 익숙한 모습 그대로. 때로는 익숙하고, 때로는 달라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뚝딱거렸다.
하지만 졸업식이 가까워져도 학교의 풍경만큼은 달라지지를 않은 것만 같았다. 학교가 어수선한 건 여전했다. 얘들도 마치 대입이 끝나고 난 후의 교실처럼 다들 여전히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사람을 찾기도 힘들었다.
쌍꺼풀이 새로 생긴 친구에게 궁금했던 근황을 물었다. 대학교 추가합격에 붙었다고 했다. 좋은 소식이었는데 괜히 물어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쁜 소식을 온 마음 다해 축하해 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치졸해졌다. 그는 졸업식 전날 하는 축제인 '전야제'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나는 다이어트 때문에 토마토와 고구마를 집에서 싸와서 급식실에서 같이 먹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따로 저녁을 먹고 행사 장소에서 그 친구를 찾기로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나랑 싸웠던 친구도 같이 오기로 했다는 얘기를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저녁 6시가 되어서 전야제에 갔다. 그런데 6시 정각이 되도록 사람들은 대부분 다 오지 않았다. 나랑 싸웠던 친구는 나를 보더니 그냥 다른 데에 앉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건 그거대로 기분이 나빴다. 나한테 전야제 때 오냐고 전에 문자로 물어봐 놓고는 나를 찾아오지도 않다니. 막상 또 안 찾아와도 그 나름대로 서운했다니 사람 심리가 참 이상했다. 그랬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나를 찾아와서 전야제 무대 끝나고 얘기할 시간을 좀 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내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겠지만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도도하게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그를 또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상대를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싶어서 순간 마음이 약해지려고도 했다. 무엇보다 오래간만에 보는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살짝 낯설게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내가 그랑 정말 친하게 지내던 때가 있었던 게 이제는 먼 전생의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왠지 믿기지를 않았다.
전야제 무대는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별 달리 재미있지도 않았다. 곧 졸업할 친구들이 춤추는 무대는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되게 활기찬 분위기의 무대인데도 보고 있으니까 오히려 더 슬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매년 선배들의 전야제를 봤을 때에도 그런 공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졸업이 다가왔다는 게 실감이 나니 퍽 슬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졸업생들을 위한 영상편지를 보면서는 펑펑 울었다. 처음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수준이었는데, 나중에는 눈물이 얼굴 전체를 덮을 만큼 흘러내렸다. 혹시나 나랑 싸웠던 친구를 다시 볼 경우를 대비해서 자존심을 지키고자 화장을 열심히 해뒀는데 거기다가 울어버렸다. 눈가가 눈물이 화장품에 접촉하는 느낌 때문에 얼얼했다.
슬펐다. 이제 진짜 두 번 다시 이 학교의 복도를 학생 신분으로 걸어 다니지는 못 하겠구나, 이 선생님들을 보는 게 막 진짜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기분이 들어서.
그렇게 흘린 눈물을 겨우 닦을 시간만 좀 가지고 약속대로 친구를 만났다. 그는 나를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계단 쪽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시시콜콜한 얘기여서 살짝 실망했다. 겨우 그런 소리나 하자고 나를 불렀나 싶었다. 그런데 그는 이내 다른 얘기를 꺼냈다.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가 고개를 숙이니까 내가 오히려 더 무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슬펐다. 이제 상대는 내가 더는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한 때는 내게 소중했던 사람이었는데. 나는 자꾸만 과거 기억 속의 상대의 얼굴을 떠올려보며 그의 얼굴이 변한 걸지 되짚어보게 되었다.
이래저래 더 슬퍼져 버려서 무척 일찍 학교 기숙사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9시, 10시부터 누워 있었더니 저절로 잠이 쏟아졌다. 슬프고 우울한 기분에 그랬다.
그다음 날이 졸업식이었다. 당일 날에는 한참이나 늦게 일어나 겨우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했다.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 서로 졸업 앨범에 축하 인사를 적어주고, 상장을 받고, 기념품도 받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졸업식 때에도 막 울었다. 그러다가 정신없이 내려오느라 물건을 잃어버려서 혼났다.
엄마는 졸업식 때 우는 애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찔렸다. 선배들 졸업식 때에는 서로 정이 들어서 그럴 만하다고 하시더니... 어째서인지 그저 우리 학년 친구들이 우는 게 보기가 싫었던 걸까?
그리고 다음 날은 정월대보름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달을 보고 소원을 빌라고 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는 건 엄마가 예상치도 못하게 졸업 선물을 주셨다는 점이다. 시계랑 카드를 주셨는데 그걸 보고 마음 한편이 찡해졌다. 눈가에 다시 눈물이 고였지만 우는 게 보기 싫다는 엄마 앞에서 또 울기가 민망해서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