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밤 11시 30분.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공항(Václav Havel Airport Prague) 밖으로 첫 발을 내딘 시각.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면, 그 첫 발자국을 내딛던 순간이 여행 중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들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예정대로라면 프라하에 밤 10시쯤에 도착했어야 할 비행기가 연착이 되면서 나는 28인치 캐리어와 함께 공항 2 터미널 주차장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됐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미리 깔아놓았던 우버 어플을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며) 켜 보았다. 카카오 택시처럼 내가 서있는 자리로 호출이 되는 줄 알았는데 공항 안에서는 지정된 장소로만 호출이 된단다. 친절히 영어로 쓰인 픽업 장소를 읽어봐도 어디인지 찾지 못한 나는, 다행히 픽업 장소를 찍어 사진으로 올려준 네이버 블로그를 찾아내어 무사히 우버를 잡아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유럽에서 맞는 첫 아침, 신기하게도 7시에 눈이 자동으로 떠졌다. 전 날의 긴 비행, 새벽 1시가 다되어서 숙소에 도착, 그리고 그 시간 거실에 앉아있던 다른 숙박객들 사이에 껴서 맥주를 마시다 잤는데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숙소를 나서는 몸이 가벼운걸 보니 잠자리가 편하긴 했나 보다.
조식 시간이 되기 전에 거리 가늠도 해볼 겸, 아침 골목 풍경을 느끼면서 카를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많이 이른 시각은 아니었는데도 카를교는 상상했던 것보다 꽤 한산했다. 덕분에 관광명소가 아니라 '다리'로써 카를교를 이용하는 현지인들의 발걸음에 맞춰 그 위를 걸어볼 수 있었다.
낮에 방문한 구시가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아,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이란 건 이런 분위기구나 생각하며 뜨르들로(trdelnik, 굴뚝빵)와 커피를 한 잔 샀다. 그리고 그 유명한 천문 시계탑이 있는 구 시청사 쪽으로 다가가는데 웬걸,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정각이 가까워져 천문 시계탑 앞에 인형 퍼포먼스를 보기 위한 사람이 가득 모이긴 했는데 시계탑이 어딘가 많이 아픈지, 인형이 나오는 구멍을 빼놓고는 모두 공사 자재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해가 진 후에 구 시청사 전망대에 올라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는 광장 야경을 찍는 게 목표였는데. 그땐 어찌나 허무했는지, 공사 중인 시계탑 사진은 한 장도 안 남겼고 이후 4일 동안 구시가 광장으로는 한 번도 발걸음이 가지 않았다.
프라하에 머무르는 동안 1개의 투어에 참여했었다. 바로 RuExp 팀의 '팁투어' 였는데, 별도의 신청 없이 가볍게 참여할 수 있어 여유가 있던 날에 시간을 내어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투어에 참여했던 날은 칼바람이 정신없이 불던 추운 날이었는데도, 투어 가이드 님께서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며 정말 열정적으로 3시간 내내 관광지들과 프라하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나는 사실 서서 설명을 듣는 것조차도 힘들었기에 가이드님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나름 일찍 투어를 참여한 덕분에 투어 다음 날 프라하 성에 혼자 다시 들러 투어에서 소개받았던 장소들을 재미있게 둘러보기도 했고, 이후 프라하에서의 일정을 잡는데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익히 듣긴 했지만, 오후 4시 반만 되어도 깜깜 해지는 하늘 아래서 직접 돌아다녀보니 이건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숙소에서 꼬박꼬박 조식을 챙겨주니 일찍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지만, 한국에선 초저녁이었을 시간에 찾아오는 이른 밤은 금세 피곤해져 침대와 이불 생각이 나게 만들었다. 뭐, 밤거리와 야경을 원 없이 볼 수 있었다는 점은 나쁘지 않았다. (이후 부다페스트에서는 꽤나 이득이었던 부분)
성 비투스 대성당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만난 성당이다. 사진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함과 외관 곳곳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에 보자마자 압도되기도 했고, 투어 가이드님이 체코의 역사부터 시작해 프라하 성에서 일어났던 주요 사건들, 성당에 숨겨진 의미 등을 너무 재미있게 짚어주셔서 그 내용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기 전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입장료를 내고 단순히 돌아보고 나오기보다는 9세기부터 이어진 성당의 역사와 조각, 스테인드 글라스의 의미를 미리 공부해서 알고 보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에겐 유이하게 투어를 듣고 나서 보았던 성 비투스 대성당과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성당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라하 성을 보고 나오는 길에 마침 시간이 맞아 근위병 교대식까지 볼 수 있었다.
비셰흐라드는 조용히 산책하고 풍경이나 야경 감상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숙소 사장님께서 추천해준 동네다. 프라하 중심지로부터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조용하고 경치 좋은 동네 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대신 어두워지면 사람이 없고, 낮에는 멋있어 보이던 성당의 으스스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살짝 무서울 수 있으니 주의. (한밤 중에 찍은 사진들 같이 보이지만 비셰흐라드에서 내려올 때가 저녁 6시였다.)
프라하에서 근교는 당일치기로 체스키크룸로프 한 곳만을 다녀왔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이동시간만 왕복 6시간이 걸려 다녀온 것 치고는 크게 남는 게 없었던 하루로 기억한다. 무엇보다도 날씨가 굉장히 안 좋았고, 작은 마을을 소소하게 즐기며 둘러보기에는 관광객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어찌어찌 사람이 가득한 이발사의 다리, 체스키크룸로프 성 등을 찍고 나와, 프라하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스보르노스티 광장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했다. 작은 마을답게 마켓 규모가 크지도 않고 관광객이 뒤섞인 정신없는 분위기가 아니라, 소소한 시장 느낌이라 마음에 들었다. 마을을 떠나기 직전이긴 했지만, 멀리까지 왔는데 잠시나마 내가 기대했던 분위기를 느끼고 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