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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는 법.

결혼 전 나 홀로 떠난 하와이


 

2월까지 비행을 했었다.

처음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되었던 때

잠시 스쳐가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비행으로 겪게 되었던 수많은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어느새 9월 지금까지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종식되지 않았다.


매일 전 세계 여러 나라로 비행을 나가던 내가

집에 있는 이 시간이 익숙하지는 않다.

문득문득 답답하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사실 나는 여름밤 공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아가씨 때는 늦은 저녁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코끝을 스치는 풀 냄새를 머금은 밤공기를

오래도록 느끼곤 했다.
아기 엄마가 되고서는
그리고 코로나가 오고 나서는
여름밤공기는 나에게 사치가 되었다.

빨래를 널기 위해 나간 베란다에서

우연히 만난 풀냄새 나는 청량한

여름밤 공기를 맡고는

멍하니 몇 분 동안은 베란다에 서 있었다.


원치 않게 집안에 갇혀있는 요즘.

코로나가 아왔고,

비행을 못하게 되면서  

내가 만든 사진첩 목록이 있다.



'숨 쉬는 공간'이란 목록인데,

이곳에는 나 홀로 떠났던 하와이의 사진과,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칸쿤.

아이와 함께했던 제주.

신혼 시절 남편과 함께 갔던 파리와

행복한 표정으로 캐러멜 팝콘을 들고 영화관에서 찍은 사진들이 담겨있다.


아기를 돌보다

기다리던 낮잠 자는 시간이 찾아오면

이어폰을 귀에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튼다.

그리곤

'숨 쉬는 공간'에 들어온다.

조용히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을 보,

다이어리에 적어 놓았던 행복했던 여행의 기록을 읽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이유가 이것인 것 같다.

지친 일상을 보내다,

여행을 가서 힐링을 하고 다시금 힘을 얻어

일상을 살아내기에-

하지만 '코로나'로 발 묶인 지금.

답답한 마음을 그간 찍었던 행복했던 사진들을 보며 달래다 보면  

언젠가는 끝없을 것 같은 코로나도 종식되는 날이 오겠지라며 위안 삼아 본다.


이것이 요즘 내가 하는 코로나 블루 극복법인데,

꽤나 도움이 된다.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언젠가는 예전처럼 여행 가는 날들이 찾아올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랜만에 마주한 추억은

2004년 결혼하기 전

혼자 떠났던 하와이로의 여행이었다.



난 가끔 사람은 간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작정 떠나왔지만 문득 본전 생각이 났다.

'투어를 갈까 그래도 여행을 왔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려놓았다.

그 욕심을


그리곤 생각했다.

사치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지금 나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중이다.

언젠가 아련하게

 '추운 겨울날 문득 하와이로 혼자 떠나왔었지-'라고 과거를 추억할 수 있도록.

이 기억이 미래에 나에겐 참 소중한 재산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누군가 나에게 홀로 떠난 여행이 어땠는지 물어본다면 나의 경험을 기억해내어

대답해 줄 수 있다는 것.


-하와이의 선선한 바람이 부는 카페 창가에 앉아 다이어리를 정리하며 미래의 나와 만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



-한국시간 새벽 3시, 시차 때문에 몽롱해 잠을 청하기 전 커튼을 열었을 때 문득 마주치게 된 와이키키 해변은 눈이 달아버릴 것같이 찬란하다는 것.


-혼자 떠난 여행은 처음이기에

가끔 문득문득 외롭다고 느껴질 때면

나에게 찾아온 외로운 감정을 인정하고,

고요 속에 나 자신과 만나는 일은 낯설었지만

돌이켜보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


-홀로 일찍 도착한 공항에서 여유 있게 그간 찍은 사진들을 보며 어느새 과거가 된 지금 이 순간을 잡고 싶다는 것, 그만큼 시간은 날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 -



-여행을 다녀온 후
핑크색 버킷리스트 공책에 적어놓았던
'나 혼자만의 여행 간다'를 볼펜으로 지웠다.
그 기쁨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있었다.

다시금 깨닫는다.
늘 꿈꿔오면 마침내 이뤄진다는 것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보게 된 책과 영화에서

코끝 시큰한 감동을 느끼고,

난 내 인생을 통해 다른 이에게

어떠한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


 

'어떠한 인생을 살고 싶은지-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얻은 여행이었다.


이거면 충분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이만큼의 깊이를 주었다.   


[ 2014년 1월 31일의 기록 ]


*사진: 행복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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