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오늘은 카드값 이체 날.

돈을 입금하고 고정비를 다시 한번 체크하고 미래의 계획을 세워보았다.


아직 가족들은 꿈나라에 있는 이 시간.

얼굴과 목에 선크림만 바르고 발코니 의자에 앉아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여유롭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정인가?

늘 일에 치이는 바쁜 일상에서 떠나 마치 파라다이스로 몸만 옮겨온 듯한 기분.


지저귀는 새소리 바닷소리 얼굴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다.


오션뷰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션뷰 객실만 남았다고 하여 예약을 했다.


오션뷰의 메리트는 확실했다.

아이들과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돌아와 방문을 열었을 때 두 눈에 노을이 물든 바다의 모습을 보는 찬란함과, 이렇게 모두가 잠든 아침 여유롭게 눈앞에 보이는 짙은색의 바다를 눈에 담으니 오션뷰는 그만큼의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며, 미래 계획을 열심히 세우다가 이내 다이어리를 덮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사실 급하지 않다.

지금 당장 진급을 하지 않아도,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지 않아도 나는 지금의 나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경계할 것은, 늘 미래를 위해 현재를 기꺼이 내주었던 어찌 보면 습관같이 하고 있었던 가치 있는 일을 해서 결과를 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약간은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문득 파라다이스 같은 이곳으로 여행을 와 내가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내 삶 곳곳에도 좋아하는 글 쓰는 시간, 책 읽는 시간, 피아노 치는 시간 같이 내가 숨 쉴 시간을 나에게 기꺼이 내어주자는 생각을 했다.


발코니 짙은 갈색 나무 책상 위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여행은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선포하고 야심 차게 챙겨 온 책이었다.


나는 비행을 하며 늘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케리어에 넣고 다니는데, 책상 위의 책이 바로 그 책이었다.

제목만 보아도 좋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와 2025년을 함께했다.


1년 동안 이 책은 내 손에 있었다.

호텔 방에서 푹 자고 일어나 침대에 기대어서 읽거나, 햇볕 좋은 날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반짝이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었던 기억, 비행이 아닌 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기억과 같이 수많은 순간을 나와 함께했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읽을수록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행복은 여가에 있다'는 구절과 '지금 현재를 살 것.'이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여름 나라에서 배부르게 조식 뷔페를 먹고 신나게 수영하며, 허기가 지면 핫도그와 감자튀김과 망고 빙수를 먹는 시간들.


수영 후 수건을 덮고 낮잠이 든 귀여운 둘째 옆에서 같이 달콤한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따끈한 쌀국수와 반세오를 먹는 여행 일상의 반복이 좋다.


야시장에서 산 천 원짜리 선물에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행복감과 자연이 주는 반짝이는 초록 나뭇잎과 선물 같았던 노을까지도 지금, 현재를 잘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 와 충분히 충전했으니, 다시 일상과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힘이 생겼다.


여행의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일상에 치어
가치 있는 것들만 하며
습관적으로
앞만 보며 살아가다가

일상에서 벗어나
내가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것.

그리고
하나 더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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