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인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바로 이곳

새벽부터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깬다.


15분씩 알람을 맞춰가며 회장을 하고, 머리를 하고 늘 그렇듯 새벽 루틴대로 승무원의 착장을 마친다.


새벽 비행은 리무진 버스가 많지 않기에 반드시 주워진 시간에 빠르게 준비를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피곤하지만 이번 비행만은 즐겁게 준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 나는 모든 승무원들이 좋아하는 그곳에 가기 때문이다.


내가 갓 승무원이 되었던 시절.

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가게 되는 이곳을 좋아하게 된다면 오래 비행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이곳을 꽤 좋아하게 되었고, 이렇게 오래도록 비행을 하고 있다.

팀장님의 그 말씀은 사실이었다.


찌는듯한 태양이 머리에서 이글거리지만, 마사지 샵에 들어가는 순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이 시원해진다. 2시간의 마사지로 새벽 비행의 피곤함은 녹아내렸다.


그다음 일정을 고민한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 끝에 내린 곳은 맛있는 수끼를 파는 곳이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고르고, 기다린다.

이곳은 기다림의 시간도 행복하다.


맛있게 먹고, 여유롭게 근처 팬시 샵에서 딸과 아들에게 줄 문구류 쇼핑도 하고, 슈퍼에 들려 과자와 젤리를 산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과일을 파는 카트에서 잘 익은 두리안을 만나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두리안의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텔에서는 먹을 수 없기에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길거리에서 맛있게 먹는다. 이 또한 이곳을 좋아하는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잘 익은 두리안에서는 맛있는 진한 고구마 맛이 난다.


맛있게 먹고 통통해진 배를 뿌듯해하며, 두 손 묵직이 호텔로 돌아간다.


언제부터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 체류하는 동안 많은 승무원들이 지나가는 시간들을 아쉬워하며 본인들만의 행복을 찾아 나선다.


'방콕'



이름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이곳.

방금 다녀왔지만, 또 가고 싶은 이곳.

오래도록 비행했지만 이곳은 늘 가고 싶은 곳이다.


아이들과 화상 통화를 하며, 선물로 산 과자와 젤리 그리고 문구류를 보여주니 엄마 어서 오라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 나 또한 행복해진다.


어느새 8월.

일 년이 한 달처럼 지나가고 있다.


8살인 딸이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엄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지 않아?"


그 질문에 내가 답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껴지는 건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많으면 더 그렇게 느껴진데.

엄마는 어른이 되고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졌는데, 8살인 네가 그렇게 느껴진다니 너무 좋은 걸? 이번 여름 행복한 추억 많이 만들자. 우리."


대답을 들은 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하게도 내가 이렇게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느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운이 좋게도 방콕 비행이 자주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승무원 직업의 특성상 한 달 스케줄이 부여된 후 그중 좋아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달은 조금 더 행복하게 비행할 수 있는 것 같다.


픽업 전, 너무 많이 먹어 꽉 끼는 치마와 다소 부은 얼굴이 이곳에서 얼마나 알찬 스테이를 보냈는지 알 수 있다.


호텔 로비에서 픽업 시간에 만난 승무원들의 대화에 너무 공감되어 웃었다. 서로가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냈는지 표정에서부터 느껴진다.


맛있게 먹고, 피로도 풀었으니, 한국으로 가는 새벽 비행도 거뜬히 할 체력이 생겼다.


어느새 찾아온 밤.

공항 가는 길.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방콕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몇 번의 방콕이 남았을까?

비행으로든 여행으로든 언제까지 내가 사랑하는 방콕을 눈에 담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시간 여행자'


우연히 '어바웃타임'이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인생의 관점이 바뀌었다. 매일 주어지는 하루가 아니라, 나는 시간을 여행하러 온 시간 여행자라는 것을.


우린 영원한 듯 살지만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 끝이 있다. 지금 우리가 숨 쉬는 이 순간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기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멋진 여행이라 생각하며 만끽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픽업 버스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케리어를 끌며 비행 가는 길.



나에게 몇 번의
방콕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끽하자.

내가 사랑하는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방콕을











*이미지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