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주와 은수

by 여니버

"애가 참 독립적이야"

영주는 그 말에 일부 동의를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엄마 손을 잡고 율동을 따라하며 깔깔 웃고 있는데, 은수는 영주의 손을 뿌리치고 멀찌감치 앞으로 나가 멀뚱히 혼자 앉아있었다. 마치 이런거 다 재미없다는 듯이. 뚱하고 관심 없는 듯한 은수의 표정은 '시크하다, 도도하다, 쿨하다' 같은 말로 미화되었다. 태어난지 고작 200일도 안된 아이가 과연 쿨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영주도 꽤 까슬한 성격이었으므로 그런 자신을 닮았나보다고 대충 생각했다. 은수는 15개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걸었다. 돌 부터 아이들이 걷기 시작한다고 하니, 딱 남들보다 3개월이 늦었다. 돌이켜보니 뒤집기도 163일에 처음 했었다. 태어난지 100일이 되면 스스로 뒤집는다고들 하니, 시크인지 천하태평인지 모를 은수의 성향은 남들 한다는 때보다 두 세달 지나서야 발동이 걸리는구나 싶었다. 안하는게 아니라 늦게 하는거니까 기다려주면 괜찮을거라고, 그렇게 좋게 생각해버렸다. 아니, 본심은 그렇지 않았다. 영주 본인도 눈치채지 못한 마음 속에는 그것이 진짜 문제가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있었다. 그 마음을 스스로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재빠르게 회피해버린 것이다. 꼭꼭 숨겨둔 불안과 마주하기까지는 얼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은수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삼개월을 기다리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불완전하기 짝이없는 발달 공식을 공고하게 세워두고는 절대불변의 법칙처럼 삼개월이 지나면 배신 없이 말을 하기 시작할거라고 굳건히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네 살이 될 때까지 말을 못했다더라. 하긴 기훈이도 말이 참 느렸지. 기영이는 돌도 안된 애가 엄마 아빠를 부르고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천재라고 그랬었어. 그래서 기훈이도 비슷하겠거니 하고 키웠는데, 글쎄 기훈이는 세 살 때까지 말을 안했다. 그때 내 속이 말이 아니었지. 같은 배에서 나와도 완전히 다르더라니까. 근데 지금은 뭐, 입 꼭 다물고 사는 기영이랑은 달리 기훈이는 얼마나 말이 많고 다정하니."

불안해하는 영주를 달래려는 시어머니는 자신이 아는 모든 말이 느린 아이의 사례를 들며 나열했다. 하지만 영주의 눈에는 시어머니 본인도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쿠키를 산책시키며 은수 또래의 아이만 보였다 하면 다가가서 아이가 말을 언제부터 이리 잘했냐며 묻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온 가족이 하루종일 옹알이를 해대는 은수를 보면서 얘는 말을 참 빨리 하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뒤집고, 늦게 걸었어도, 말은 빠를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아이 특유의 순수하고 엉뚱한 시선으로 얼마나 기발한 말들을 뱉어 놓을지 상상만 해도 귀여웠다. 아직 오지 않은 근 미래를 상상하며 가족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었다. 아무도 두 돌이 지나서까지 은수에게서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에 무관심 한 듯 눈길을 잘 주지 않고 옹알이 조차 잘 하지 않는 은수를 보며 어른들의 눈에는 점점 걱정이 깊어졌다. 가족들과 함께한 조촐한 두 돌 생일 파티에서는 축하한다는 말 다음으로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위로를 건넨 쪽도, 받는 쪽도 씁쓸한 미소를 삼키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짧은 정적을 공유했다.


은수가 자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두 돌이 얼마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뭔가 남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공포스러운 단어가 내 딸 정은수의 이름 앞에 놓이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영주는 서 있던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어머나' 보다는 '마침내' 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은 '개인 성향'이라는 말로는 해소되지 않던 이 느리고 독특한 아이를 설명하는 이름표가 뭔지 드디어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소감은 찰나였고, 그 뒤에는 자폐의 진짜 모습을 마주해야 하는 깊고 어두운 절망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폐임을 알고 보니 은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전보다 명료해졌다. 도도하다거나 시크하다는 성격으로 덮어지지 않는 무언가가 보였다. 한번은 부슬부슬 비가 오던 날 우산을 쓰고 은수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하원시간이라 어린이집 앞은 북적였다. 다행히 준비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비가 그쳐있었다.

"와 무지개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형님반 언니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영주는 순식간에 다른 세계가 된 듯이 햇빛이 쨍해진 하늘을 손차양을 하며 바라보았다. 이렇게 선명한 무지개는 영주도 처음 본 것 같았다.

"은수야, 저기 무지개 좀 봐. 은수 좋아하는 알록달록 색깔이네"

하지만 은수는 영주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떨구고 신발에 달린 리본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어린이집에서 우르르 나온 아이들은 모두 무지개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은수보다 작은 아이들도 무지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좋아했다.

"엄마 진짜로 무지개에 빨주노초파남보가 다 있어요!"

"나는 노란색이 제일 좋아!"

아이들은 모두 하늘에 뜬 무지개에 신이 났다. 엄마들은 무지개를 배경으로 아이 사진을 찍어주고 싶어 즐겁고 분주한 움직임이 주변을 감돌았다. 하지만 은수는 계속 신발끈을 당기며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끈을 떼고 싶은 걸까? 영주는 은수가 무얼하고 싶은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은수는 마치 혼자서만 다른 주파수의 라디오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영주는 답답한 마음에 은수를 안아 하늘 높이 치켜올렸다. 신발은 만질 수 없게 다리를 팔로 안아버렸다.

"빨주노초 파남보 무지개 색깔 어때요"

영주는 문화센터에서 배운 노래를 해주며 은수의 관심을 끌어보았다. 하지만 은수는 자세가 불편하다는 듯이 칭얼거렸다. 결국 무지개 쪽으로는 시선을 한 번 주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있었지만, 영주는 은수와 그 순간을 공유할 수 없었다.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다. 갑자기 화가 났다. 은수가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아차를 미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영주의 마음을 전혀 모른다는 듯이 은수는 계속 앉아서 신발끈을 당기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좀 봐보라니까 은수야. 너 도대체 왜 그래. 엄마가 미워서 그래?"

영주는 울먹였다. 내 탓을 해서라도 은수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은수의 움직임들에는 미워하는 감정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자석이 밀어내는 것처럼 기계같이 몸이 움직여질 뿐이었다.

영주가 딸을 임신했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그랬다. "영주 너는 역시 딸이 어울리지." 그 말을 듣고 나니 앞으로 딸과 알콩달콩 살게 될 노후가 그려졌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세상에 둘도 없는 모녀 사이가 될 것처럼 애틋하게 느껴졌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런 것을 바라지도 말걸. 최상의 것을 바란 욕심 때문에 최악의 것을 경험하게 된 것 같았다. 사실은 어느 것도 영주의 탓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자책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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