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필요한 건 공간,시간 그리고 자유
A Playground That Asks a Question
질문을 던지는 놀이터
2023년 4월, 한국 서울의 열린송현광장 한쪽에 파란 벽돌들이 흩어져 있었다.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어떤 곳에는 언덕처럼 쌓여 있었고, 어떤 곳에는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다. 여러장의 복숭아색 광목천이 바람에 흩날리며 누군가를 환영하며 기다리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모두의 놀이터라고 쓰여 있지만, 놀이시설은 없다.
안내문 하나뿐이다. “ No Rules, Only You!”
지나가던 사람들은 대부분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거의 같은 질문을 했다.
“여기 뭐 하는 곳이에요?”-“모두를 위한 놀이터입니다”
“어떻게 놀아요? 아이들만 노는 곳인가요?”
“정해진 규칙 없이 마음껏 놀면 됩니다. 누구든지 놀 수 있어요.”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모두의 놀이터
이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약 100년 동안 높은 담장 안에 갇혀 시민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이곳이 최근 공공 광장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땅이 시민들에게 돌아온 이곳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열린 마음으로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기대했다.
약 5시간 동안 진행된 이 활동에는 205명이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는 열린 놀이 환경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진행한 파일럿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에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놀이터의 주인공은 시설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놀이터를 완성된 공간으로 제공하기보다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우리의 개념은 단순했다.
모두에 의한 놀이터
모두를 위한 놀이터
모두의 놀이터
누구나 놀아도 되고, 어떻게 놀아도 되며, 누구와 함께 놀아도 되는 공간.
놀이터는 사람들에게 놀이를 지시하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뭔가 해볼 수 있을까?” “내가 해도 될까?”
“여기 쌓아볼까?” “같이 해보면 어떨까?”
이런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단순한 재료, 열린 가능성
우리가 준비한 놀거리는 단 하나였다.
벽돌 2400개.
이 벽돌은 일상에서 버려지는 헌 옷, 헌 양말, 폐현수막 등 섬유폐기물을 새활용하여 만든 건축용 패널을 일반적으로 익숙하고 다양하게 변형가능한 사이즈로 제작했다. (가로190*세로90*높이50mm의 크기) 지구에 해를 주지 않는 소재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놀이터를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 중 하나다. 공정 과정에서 오폐수 발생없고 화학 접착제 없이 만들어졌다.
벽돌은 0.9kg의 무게로 아이들도 들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무게가 있어 안정적으로 쌓을 수 있고, 앉거나 기대어 쉴 수도 있다.
벽돌의 색은 파란색으로 선택했다. 바다와 하늘처럼 열린 마음과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싶었다.
우리는 이 벽돌들을 질서 있게 배열하지 않았다. 일부는 쌓아 두고, 일부는 넓게 흩어 놓았다. 특별한 구조를 만들지 않은 채 단지 재료만 놓아두었다.
단순한 재료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든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상상력과 질문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고 믿었다.
이 단순한 환경 속에서 무엇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망설임에서 시작된 놀이
처음에는 사람들이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 잠시 멈춰 서서 상황을 관찰했다.
충분히 예상했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놀이의 방법이나 규칙이 먼저 제시되는 환경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없으니 어리둥절한 표정과 당황하는 모습은 충분히 이해가 갔고, 오히려 그 다음 반응이 궁금했다.
그러던 중 호기심 강한 사람들이 먼저 벽돌을 집고 쌓기 시작했다. 신기한건 머뭇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른들이고,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주변 사람들은 한동안 지켜보았다. 흥미로운 점은 최소 네 명 정도가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공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사람들은 벽돌 사이로, 낯선 사람들 사이로 들어왔다.
함께 만들어지는 놀이터
점차 다양한 장면들이 나타났다.
모르는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보자.”
“여기 연결하면 좋겠다.”
서로 질문하고 의견을 나누며 점점 더 큰 구조를 계획했다.
7살 가량으로 보이는 세 명의 아이들이 한참을 함께 벽돌을 쌓고 놀다가 잠시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아이가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랑 연결하면 어때? 더 커질 것 같지 않아?”
다른 두 아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우리 길을 만들까? 그럼 연결되잖아!” “그래, 그럼 옆 집으로 놀러갈 수 있겠네! 와~ 신난다” 세 아이들은 열심히 벽돌을 가져다가 그렇게 길이 생기고 서로 모르는 사람의 공간과 연결이 되었다.
그곳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5명의 사람들이 몇일 전 다녀왔다는 경주도시의 상징인 첨성탑처럼 쌓고 그 안에는 친구 한 명이 들어가 있었다. 길을 연결하는 아이들을 보고는
“와, 안그래도 여기서 집까지 어떻게 갈까했는데, 여기로 가면 되겠네. 고마워, 얘들아~” 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뿌듯해하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친절하게 인정해주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게 해준다.
13살의 오빠와 4살의 동생이었는데. 형이 집을 만든다고 열심히 놀고 있는데, 겨우 걷고 힘이 약한 4살 동생은 벽돌이 부족할까봐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벽돌을 최선의 힘을 다해서 들고와서 형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제 나름의 할 수 있는 방식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나름의 기쁨으로 연결하는 놀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머리색이 백발인 한 노인은 “저도 놀아도 되나요?” 하고 조심스럽게 물으시고는 “ 당연하죠! 환영합니다~” 라는 대답을 듣고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서 조용히 벽돌을 하나씩 올리며 탑을 쌓고 있었다.서두르지 않고, 잠시 바라보고, 다시 하나를 올렸다. 벽돌 하나하나에 소원을 담는 것처럼 천천히, 신중하게 자신의 방식으로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가족 단위의 놀이도 많았다. 프랑스에서 여행을 왔다는 다섯 명의 한 가족은 함께 에펠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키가 작은 아들을 들어올려 더 높은 곳까지 벽돌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엄청나게 높아지는 모습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며, 가장 꼭대기에 마지막 벽돌이 놓여졌을 때는 모두들 박수 치고 환호했다.
어떤 아버지는 두 아이와 함께 놀고 있었는데 그중 한 아이는 처음 보는 아이라고 했다. 옆에서 놀고 있던 아이였는데 아이의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자연스럽게 함께 놀고 있다고 했다. 커다란 대문 같은 형태로 쌓고 있었는데, 잠시 후 다시 갔을 때는 연령도 다양한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함께 대문을 점점 더 크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모두가 잠정적 합의를 했는지. ‘하나,둘,셋’을 외치고 다같이 무너뜨렸다.
이곳에서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러운 어울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변화하는 공간
시간이 지나면서 벽돌들은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구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구조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길이 생기고 건물이 이어지면서 작은 마을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여기저기 건물이 세워지고 길이 만들어졌다. 각각의 구조물은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작은 마을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모습이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구조를 부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쌓았다.
놀이터는 계속 변했다.
이 공간은 다섯 시간 동안 같은 모습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에 와서 놀다가 떠났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질문을 이끌어내는 공간
이 놀이터는 놀이의 방법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상대방에 대해, 가능성에 대해, 실패와 성공과 도전에 대해. 그 어떤 질문도 할 수 있는 안전하고 열린 공간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재료와 열린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편안하게 생각하고, 상상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연결했다.
우리는 놀이터를 완성해서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함께 놀이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을 뿐이다.
무엇이 놀이터를 만들게 되는가?
이 놀이터는 놀이의 방법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그리고 가능성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단순한 재료와 열린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생각하고, 상상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연결했다. 우리는 놀이터를 완성해서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놀이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날 광장에서 우리는 하나의 장면을 보았다.
2400개의 벽돌이 흩어져 있던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이 함께 길을 만들고, 구조를 연결하고, 마을 같은 풍경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다.
누군가는 쌓고, 누군가는 연결하고, 누군가는 부수고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발견하고, 함께 공간을 만들어 갔다.
놀이터는 완성된 시설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놀이터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그 질문은 사람들을 연결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놀이를 만들어 갔다.
그렇게 미완성으로 남겨졌던 공간은
사람들의 질문과 상상 속에서
모두에 의해, 모두를 위해, 모두의 놀이터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