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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킴 Oct 15. 2018

일 년 전 구겐하임 샌드위치

프롤로그쌀국수 나라에서 쓴 글

구겐하임 샌드위치
 

이른 9월인데도 불구하고 몸서리가 추워서 재킷까지 걸치고 나와 급하게 따듯한 것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두 시간가량 고민하다 들어간 곳은 맨해튼 27가 11 에비뉴에 위치한 대형 터미널. 사람도 자동차도 드문 이곳은, 공장을 개조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새로운 공간이다. 나는 음료를 마시기 위해 찾는 곳인데 두어 번 옆에 유명 커피점을 방문한 것 빼고는 올 일이 없었다.
 

두리번 거리다가 들어온 이 샌드위치 가게. 두시가 넘는, 애매한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늦게서야 점심을 먹으러 온 이들이 있다. 오전부터 블루 스크린을 보고 있던 탓에 눈이 침침하기도 하고, 그냥 메뉴판을 보고 샌드위치 코너에 ‘구겐하임’이라는 글자만 보고 주문을 덥석 해버렸다. 
 
 영수증을 보니 $13.50 정도의 금액이 나왔다. 그렇게 약 10분가량 기다려서 받은 샌드위치와 따듯한 토마토 수프 그리고 따듯한 티. 적당히 구워진 흰 빵의 사이에는 시금치와 양념이 되어 구워진 새우, 그리고 약간의 매콤한 소스 등의 재료가 들어간 것 같다. 굵지 않은 빵에 질기지 않은 식감은 나름 한입 베어 물기 좋았다. 캐머마일 따듯한 것 을 스몰 사이즈로도 하나 시켰고, 족히 15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긴 나무 테이블에 빈티지한 의자에 앉아 천천히 사람들을 구경한다. 바로 맞은편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며 밥을 먹거나 컴퓨터를 하며 밥을 먹는 사람들 아니면 나와 같이 그러한 사람들을 보며 밥을 먹는 이들까지. 


관광지 쪽 동네가 아니다 보니, 나와 같이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한-두 시간 시간을 내어 온 첼시 근처의 일하는 사람들 일 것이다. 세련되게 입었지만, 늘 피곤해 보이고 금전적으로 여유롭지만 시간이 없는 이들. 
 
 나를 보자면 물론 만 24세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금전적인 여유도, 시간도, 세련된 옷도 그리고 건강한 체력도 소진되고 말았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외면적인 것과 내가 직접 피부로 느끼는 것은 다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그전에는 체력이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다시 뒤적여보니 없다. 오늘에서야 운동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 것이다. 사실 이래 봬도 이래 봬도 $10을 내고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헬스장에 다닌다. 아니 다닌다는 표현은 내게 올바르지 못하다, 사실 그냥 매달 기부를 하고 있다. 오늘이라도 운동을 갈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이미 금요일 저녁이라 작은 술 약속을 잡아놓았다. 그럼 주말에 갈까, 아니야 토요일 오전에는 브런치 약속과 저녁에는 루프탑을 가기로 했다. 일요일에는 과제하고 전시 철거에 밀린 집안일을 하면… 이렇게 매달 헬스장에 기부를 시작한 지 벌써 6개월째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문득 뉴욕에 온 지 약 7년째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약 두 달이 남았다. 머리가 복잡하다. 나 뉴욕 잘 정리할 수 있을까. 처음엔 맛있게 먹던 샌드위치가 입천장을 다 긁어놓았다. 추워서 시킨 따듯한 캐머마일은 아직 한 모금도 안 마셨고, 남은 샌드위치 반 조각은 애석하게 보인다. 시계를 보니 아직 한 시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끝나가는 점심시간에 나갈 채비를 서둘러하는데, 내가 자리에 앉기 전에 이미 있던 몇 사람들은 그 자리 그대로이다. 




위의 글은 2017년 9월 9일에 뉴욕에서 작성했던 글이다. 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내가 엊그제 뉴욕에서 있었고 앞으로도 꿈이 가득했던 그곳에 머물거라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그 일 년 사이에 나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왔고 그 사이에 작업실이 있었다가 없었으며 꽤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일을 했고 베트남에 이사를 갔었다. 물론 지난 일 년의 시간들은 내 계획에 없었고 꽤나 사람의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버릴지,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몸소 배웠다. 그 당시의 변화하는 삶에서 마주쳤던 감정들과 사건으로 구성된 날들, 그리고 현재의 시간들을 글로 작성해서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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