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킴 Sep 26. 2023

아무도 없는 카페

그냥 일기



아침에 눈을 비비고 대충 세수를 벅벅 하고는 좋아하는 색감의 니트를 집어 들었다.

벌써 여기저기 보풀이 일어났지만 오늘 하루는 아는 사람과의 약속이 없으니 편한 옷을 골라 입어야겠다 생각했다. 벌써 소매 부분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아침을 차려 먹을까 고민을 하다 이내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들고 지하 일층으로 내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고민할 틈도 없이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통영에서 거제 바닷가의 한 카페에 오기까지는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익숙하게 내비게이션을 켜고 이내 운전을 시작한다. 가는 길은 보통의 국도와 다름없지만 카페에 가까워질수록 조용한 바닷가 풍경이 보인다. 근처에 공장이 꽤나 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대형 트럭들을 천천히 지나쳐 카페에 도착한다. 차는 대여섯 대쯤 주차되어 있다. 해가 지기 두어 시간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카페에는 많지 않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입구 앞 빵코너에서 좋아하는 에그타르트와 소금빵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14,700원. 물가가 비싸진 것을 체감한다. 이럴 바에는 빵을 구워 먹는 게 낫겠다 싶지만 빵 하나씩 굽기엔 내 체력 소모가 막심하니 그냥 사 먹기로 한다. 


얼마 전부터 따뜻한 음료를 시켜 마시는 것을 습관 들이고 있다. 단지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차와 따뜻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건강해진다고 장담할 수 없겠지만 우선은 조금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만 있다면야 음료 온도하나 포기 못하랴. 사실 커피를 마시기에 이건 또이또이다. 검정트레이 쟁반에는 내가 고른 빵 두 개와 빨간 머그컵에 가득 담긴 아메리카노와 포크, 나이프가 있었고 이를 조심히 들고는 이층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거제의 한 조선 선박 부품을 만들던 공장을 새롭게 카페로 바꾼 것인데 어찌나 자리도 많고 뷰도 시원시원한지 혼자 와서 조용히 작업하기 딱 좋겠다 생각을 하고 오늘이 두 번째 방문이다. 사실 집에 아무도 없는 게 심심해서 밖으로 나와 사람들 속에서 일을 하면 사람 구경도 하고 일도 백색소음을 통해 조금 더 집중되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도 없으니 내심 아쉽기도 하면서 이 넓은 공간에 혼자 있을 수 있다니 오늘은 운이 좋구나 생각한다. 


오늘의 할 일은 세 가지이다. 일 번. 11월에 가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일정이 뒤로 밀려 둘째 주의 십일월에 도착한다고 이메일을 작성해야 한다. 원래 일정이라면 11월 1일에 출발과 도착을 마무리 지어야겠지만, 서울에서 이사를 가는 바람에, 그리고 인테리어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11월 첫째 주에 끝난다는 일정으로 인해 아쉽게 내 모든 연말의 일정들이 조금씩 꼬여버렸다. 인생은 원래 계획한 일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하거늘 조금씩 엇갈리고 꼬여버린 일정 탓에 요즘은 온종일 머리가 아프다. 첫 번째 인테리어 업체는 공사 착공 삼 일 전에 일방적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취소해버렸다. 오전 여덟 시 삼십여분쯤에 다른 업체를 알아보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대기업 유명 인테리어 업체를 두루 돌아다녔고 그중 예산을 맞춰 준다는 업체와 진행하기로 했는데 막상 견적서를 받아보니 30% 추가된 금액을 제시했다. 세상에나. 서울 사람끼리 이렇게 눈 뜨고 코베이는 상황에 견적서를 유심히 들여다보았고 높게 책정된 금액의 공간은 포기를 해야겠다 했는데 부분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인테리어 공사 기간과 일본 레지던시 일정을 미루는 것이 더 이상 힘들어 자재를 일부 저렴히 바꾸는 쪽으로 하고 내 기존 예상 예산보다 18% 추가된 금액에 진행하게 되었다. 매년 9월에는 다사다난한 일들이 유난히 더 많았는데 매년 9월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것이 무엇 하나 집중하기가 힘들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 단체전의 일정을 잘 소화하고 성적도 좋게 거두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9월과 2월에는 유난히 예민해지는데 아마 6개월마다 진행해야 하는 건강검진이 이유겠다. 그래나 올해 검진은 10월로 미루고 이성적으로 차분히 진행해야 하는 이사와 인테리어, 전시등을 모두 9월로 몰아버려서 안심했는데 어째 더 예민해진 것은 기분 탓일까? 


오늘에서야 인테리어 공사 일정을 정리하게 되었다. 처음엔 6주를 예상했지만, 여차저차해서 일본 레지던시 일정으로 인해 11월 둘째 주에 인수인계를 약속했다. 레지던시 짐을 미리 싸두고 싶지만 내 모든 짐은 이삿짐 컨테이너에 고이 잠들어 있어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짐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당분간 단벌신사이고 통영에 내려와 있다. 처음엔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애초에 작업실은 누울 곳이 마땅치도 않을뿐더러 일과 생활을 분리하고 싶은 마음에 포기를 했다. 통영에서 지내는 집의 작은 방에는 이젤과 물감이 있으니 작은 4호 작업 정도는 할 수 있다. 가진 캔버스는 4호뿐이라 미리 추석 전에 캔버스를 주문해야겠다. 


두 번째 할 일은 조명을 찾는 일이다. 집에 들어갈, 그리고 작품 속에서 그려질 조명들. 을지로를 돌아다니며 찾는 것이 빠르겠지만 온라인으로 대략의 원하는 조명의 모양을 먼저 찾는데 집중하기로한다. 검정 갓 조명을 원하는데 금액과 크기를 보고 잘 골라야 하겠지. 이 부분은 이-삼주에 걸쳐 고를 예정이다. 세상에 종류와 업체가 어찌나 많은지. 조금만 집중하지 않으면 디자인 카피라 날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서 봐야 한다.


세 번째는 일본어 공부를 하는 일정이라 적혀있다. 주문한 따뜻한 커피를 마시려 잔을 드니 커피가 벌써 식어있다. (대충 공부하고자 하는 내 마음도 조금 식었다는 뜻..^^)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괜히 집에 놓고 싶은 병풍이나 조명만 검색하게 되는데 일본에서 어찌어찌 생활하겠지 하는 생각과 아휴 그래도 먹고 싶은 밥은 잘 먹고살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과 걱정이 동시에 밀려온다. 시계를 볼까 하다 창문 밖을 보니 언제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는지 창문에 비치는 건 온통 카페 안 노란 조명들 뿐이다. 달이 꽤나 커졌는데 이번 주에는 대보름을 볼 수 있겠다 생각이 든다. 아 추석이구나. 작년 추석에는 이태원의 한 카페의 루프탑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올해의 추석에 마시는 커피는 어떨라나 생각해 본다. 맛있겠지 뭐.. 



작가의 이전글 오랜만에 병원에 다녀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